"애 때문에 … " 고달픈 중산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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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과 후 학교를 마치고 온 아들 서진이에게 이채병씨가 숙제를 지도하고 있다. 딸 솔이는 매일 옆에서 ‘어깨 너머’ 공부를 한다. 이씨는 "직장을 그만둔 뒤 솔이의 정서가 많이 안정됐다"며 "이제는 책도 읽으려 한다"고 말했다. 변선구 기자

'직장 맘'이었던 이채병(37.서울 송파구 방이동)씨는 '비빌 언덕'이 없었다. 친정어머니는 청주에 사시고, 시어머니는 팔순이 넘었다. 그래서 이씨는 산후조리가 끝난 직후부터 주말마다 갓난아기를 업고 뛰어다녔다. 어린이집, 베이비 시터, 옆집 할머니 등 애 봐줄 사람을 꼬박 2년간 수소문했다. 결국 마땅치 않아 지난해 여름 사표를 냈다. 13년 전 '직장이냐 결혼이냐'를 선택해야 했던 고민이 '직장이냐 육아냐'로 바뀐 것이다.

20일 오전 8시. 이씨는 이제 고객 대신 둘째인 딸 솔이(2)의 눈을 마주 본다. 매일 출근 전쟁을 치렀던 시간에 딸의 미소를 보며 웃게 됐지만 유명 보험회사 보험설계사(FC)였던 직업에 대한 미련은 여전하다. 첫째아이가 다섯 살 때 어렵게 구한 직장인 데다 자아 실현감도 느낀 곳이기 때문이다. 올해는 공인재무분석사(CFA) 자격증까지 딸 생각이었다.

◆ 이씨의 보육 전쟁=2004년 5월. 이씨 부부는 고민 끝에 둘째 솔이를 낳았다. 아들 서진(12.방이초 6)이가 동생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소원을 해서다. 남편은 건축사무소에 다닌다.

맞벌이 부부의 보육은 간단치 않았다. 100일이 갓 지난 아이를 업고 처음 찾아간 곳은 사임당 어린이집. 돌 전후의 아이 4명씩을 받아 정성껏 봐주는 프로그램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아이는 3개월을 못 버티고 시름시름 앓았다. 따뜻한 애정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웃 할머니를 찾아갔다.'친손자처럼 봐줄 분을 찾습니다'란 전단지에 60세 할머니가 자원한 것이다. 그러나 돈 욕심이 더 난 듯했다. 3주째 접어들어 "허리가 아프다"고 하더니 연락이 두절됐다. 마지막으로 두드린 문은 베이비 시터. 면접을 세 번이나 보고 택한 아주머니 역시 이씨가 30분만 늦게 와도 눈치를 줬다.

"돈은 돈대로 들고… 봐주는 사람이 자주 바뀌니 아이 정서도 불안해졌어." 이씨는 직장생활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 "직장 그만두면 중산층도 안 되는데"=건축사무소 현장소장으로 일하는 남편과 이씨의 월급을 합치면 월수입은 600만원이 넘었다. 이 중 보육인건비 80여만원과 분유.기저귀.이유식 값 등을 합쳐 150만원 정도가 솔이에게 나갔다. 부부 한 사람 월급의 반을 넘는다. 하지만 이젠 직장을 그만둬 한 달에 100여만원씩 하던 저축도 못하게 됐다. 이씨는 "중산층에 진입하는 것도, 중산층을 유지하는 것도 보육 장애물에 걸리면 어렵다"며 "보육 문제가 해결돼야 사회도, 가정도 건강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 특별취재팀=고현곤(팀장), 양영유.정철근(사회부문), 나현철.김준술.손해용.임장혁(경제부문), 장정훈(디지털뉴스부문), 변선구.최승식(사진부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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