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 후 학교를 마치고 온 아들 서진이에게 이채병씨가 숙제를 지도하고 있다. 딸 솔이는 매일 옆에서 ‘어깨 너머’ 공부를 한다. 이씨는 "직장을 그만둔 뒤 솔이의 정서가 많이 안정됐다"며 "이제는 책도 읽으려 한다"고 말했다. 변선구 기자
20일 오전 8시. 이씨는 이제 고객 대신 둘째인 딸 솔이(2)의 눈을 마주 본다. 매일 출근 전쟁을 치렀던 시간에 딸의 미소를 보며 웃게 됐지만 유명 보험회사 보험설계사(FC)였던 직업에 대한 미련은 여전하다. 첫째아이가 다섯 살 때 어렵게 구한 직장인 데다 자아 실현감도 느낀 곳이기 때문이다. 올해는 공인재무분석사(CFA) 자격증까지 딸 생각이었다.
◆ 이씨의 보육 전쟁=2004년 5월. 이씨 부부는 고민 끝에 둘째 솔이를 낳았다. 아들 서진(12.방이초 6)이가 동생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소원을 해서다. 남편은 건축사무소에 다닌다.
맞벌이 부부의 보육은 간단치 않았다. 100일이 갓 지난 아이를 업고 처음 찾아간 곳은 사임당 어린이집. 돌 전후의 아이 4명씩을 받아 정성껏 봐주는 프로그램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아이는 3개월을 못 버티고 시름시름 앓았다. 따뜻한 애정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웃 할머니를 찾아갔다.'친손자처럼 봐줄 분을 찾습니다'란 전단지에 60세 할머니가 자원한 것이다. 그러나 돈 욕심이 더 난 듯했다. 3주째 접어들어 "허리가 아프다"고 하더니 연락이 두절됐다. 마지막으로 두드린 문은 베이비 시터. 면접을 세 번이나 보고 택한 아주머니 역시 이씨가 30분만 늦게 와도 눈치를 줬다.
"돈은 돈대로 들고… 봐주는 사람이 자주 바뀌니 아이 정서도 불안해졌어." 이씨는 직장생활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 "직장 그만두면 중산층도 안 되는데"=건축사무소 현장소장으로 일하는 남편과 이씨의 월급을 합치면 월수입은 600만원이 넘었다. 이 중 보육인건비 80여만원과 분유.기저귀.이유식 값 등을 합쳐 150만원 정도가 솔이에게 나갔다. 부부 한 사람 월급의 반을 넘는다. 하지만 이젠 직장을 그만둬 한 달에 100여만원씩 하던 저축도 못하게 됐다. 이씨는 "중산층에 진입하는 것도, 중산층을 유지하는 것도 보육 장애물에 걸리면 어렵다"며 "보육 문제가 해결돼야 사회도, 가정도 건강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 특별취재팀=고현곤(팀장), 양영유.정철근(사회부문), 나현철.김준술.손해용.임장혁(경제부문), 장정훈(디지털뉴스부문), 변선구.최승식(사진부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