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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 토론] 이라크 추가 파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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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우리 국군이 이라크에 추가로 파병된다. 아직 국회 동의절차도 남아 있고, 반대 여론도 가라앉지 않고 있지만 파병은 기정사실이 됐다. 이제 어떻게 하는 것이 우리 국익에 가장 도움이 되고, 만약에 있을지도 모를 우리 군의 피해를 최소화하는가를 따져야 할 때다. 이를 위해 국제 환경과 우리 안보에 미칠 영향, 파병에 앞서 준비해야 할 점 등을 점검해 본다.

*** 참석자
▶ 박복영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
▶ 송영선 한국국방硏 안보전략연구센터 소장
▶ 이정민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이상 가나다 순)
사회=김진국 본사 논설위원

▶사회=파병의 결정적 큰 계기가 된 유엔 안보리 결의안의 의미부터 살펴볼까요.

▶이정민 교수=결의안은 다국적군 활동을 유엔 기치 아래 허용하는 한편 이라크 과도통치위원회의 역할을 향후 1년간 안보리의 틀 안에서 승인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박복영 연구위원=결의안은 안보리가 이라크 과도통치위원회의 활동을 1년 뒤 검토할 권한을 주긴 했지만 전체적으론 미 군정의 합법성을 국제사회가 인정한 것으로 봐야 합니다.

▶사회=일부에선 베트남전 때처럼 우리가 발목이 잡히지 않겠느냐고 우려합니다.

▶송영선 소장=베트남전은 전면전.정규전이었고, 전투병을 파병했지만 이번엔 전쟁이 끝난 지역의 치안유지를 위해 파병한다는 점이 가장 크게 다릅니다. 물론 국지적으로 전투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전 후 벌어진 전투작전 6개 중 5개를 미군이 전담했습니다. 미군은 동맹군에게는 치안유지 임무만 맡깁니다. 또 국군이 파병될 것이 확실한 북부지역에서 종전 후 지금까지 사망한 동맹군 수가 6명에 불과합니다. 그런 점에서 베트남전과 비교하는 건 어불성설이지요.

▶李교수=유엔의 승인을 받았다는 점에서 베트남전과는 국제법적 위상 면에서 본질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또 반공이나 미국 지지 같은 막연한 목표가 아니라 이라크의 치안 안정이라는 구체적인 목표가 있다는 점도 다릅니다. 다만 파병 기간은 시한부로 해야 한다고 봅니다. 파병 후 1년 뒤 안보리의 중간평가를 계기로 파병을 계속할지 또는 철수할지를 결정할 외교적 공간을 확보해 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사회=우리 군이 얼마나 위험부담을 안아야 하는지도 큰 관심사겠지요.

▶朴위원=현재 이라크 내 테러의 양상을 보면 공격 목표가 미군에서 유엔.동맹군, 심지어 친미 성향의 이라크인으로까지 확대되고 있습니다. 그들의 눈에는 파병을 결정한 한국도 미 군정의 협조자로 비칠 것이며 그들의 공격 목표가 될 수 있습니다.

▶宋실장=현재 이라크 내 테러가 급증하는 것은 미국의 집중소탕전에 대항하는 후세인 잔당들의 마지막 발악입니다. 미국이 테러 핵심세력 5천~6천명 중 3천9백명을 잡아내자 이들은 상대적으로 허술한 동맹군을 공격해 파병을 꺼리도록 만드는 작전을 펴고 있습니다. 앞으로 한달 간은 테러가 더욱 늘어날 것입니다. 이런 표면만 보고 파병을 겁낼 필요는 없습니다.

▶사회=아직 파병될 병력의 성격.편성은 전혀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우리 부대가 현지에서 할 역할과 그에 맞는 부대 편성은 어떻게 돼야 할까요.

▶李교수=파병과 관련해 몇천이다, 1만명이다 숫자가 자꾸 제기되는데 중요한 것은 군사적 임무가 뭐냐이지 숫자 그 자체가 아닙니다. 우선 작전 내용을 정한 다음 이를 소화할 적정 병력을 정해야 합니다. 또 언제든지 추가 파병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합니다. '추가 파병은 없다'는 식으로 못박아버리면 목표로 정한 작전 수행에 제한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회=정부는 전투병.비전투병 혼성부대를 보낼 방침이라는 보도가 나왔는데.

▶宋실장=전투병이란 용어를 쓰면 안됩니다. 전투병.비전투병은 병과가 아닌 현지 임무에 따른 분류입니다. 보병.공병.의무병 모두 전투지역에 투입되면 전투병입니다. 그러나 치안유지에 투입되면 병과를 막론하고 전투병이 아닙니다.

▶李교수=정부가 파병 원칙만 세우고 어떤 병력을 보낼지는 여론의 눈치를 보고 있는데 파병에 대한 확실한 청사진을 보여야 합니다. 전투가 벌어지는 현장에서는 전투병.비전투병 구분 자체가 어렵습니다. 작전과 임무에 따라 병력의 성격이 정해지는 것이지 거꾸로는 아닙니다. 이 점을 청와대가 분명히 밝혀야 하고, 외교통상부는 국제법적 문제, 국방부는 구체적인 군사작전을 설명해 국민의 혼란을 막아야 합니다.

▶사회=우리가 부담할 비용은 얼마나 될까요.

▶宋실장=3천5백억원이라는 보도가 나왔는데 어떤 근거인지 모르겠습니다. 우선 급여.급식비가 2천명 기준으로 연간 3백40억원이 들고 그 밖에 무기.군수.병참비용이 엄청나게 듭니다. 폴란드는 파병을 일찌감치 결정함으로써 미국으로부터 병참 비용을 전부 받아냈습니다. 우리도 급여.급식만 부담하고 군수.병참 비용은 미국이 부담하도록 협상을 해야 합니다.

▶사회=이제 파병해 얻을 국제정치.경제적 득실을 따져보죠.

▶李교수=가장 중요한 것은 앞으로 한반도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전례를 확보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아직도 대미관계가 우리 외교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반세기 동안 쌓아온 한.미 동맹관계를 강화한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파병할 경우 한반도 정세가 안정될 가능성이 커진다는 점입니다. 한국군의 이라크 주둔에 대해 미국은 자신들의 세계전략 속에서 한국의 역할을 높이 평가하게 될 것입니다. 자연 북핵 문제도 잘 풀릴 가능성이 커집니다.

▶宋소장=동감입니다. 국제정치는 '현찰 결제'가 아닙니다. 군대를 보내니 바로 뭘 달라는 식으로 요구하는 건 북한식 벼랑끝 외교입니다. 미국이 원했기 때문에 굴욕적으로 따라간다는 생각보다 우리가 자주적으로 당당하게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파병하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그럴 때 미국이나 국제사회도 우리를 평가하게 될 것입니다. 또 한.미 동맹을 강화해 북한에 대한 협상력.억지력도 키워줄 것입니다.

▶朴위원=파병으로 어떤 경제적 이득을 얻을 것으로 기대하면 실망하게 됩니다. 다만 북핵 긴장이 어느 정도 해소돼 대외적 신인도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봅니다. 그러나 곧장 신용등급 상향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둘째는 복구사업 참여인데 파병하면 우리 기업의 이라크 재건사업 참여도를 높일 것이라는 기대에는 회의적입니다. 미 국방부가 올해 17억달러를 투입한 이라크 재건사업 주 계약자는 전부 미국 기업들이었습니다. 한국이 파병했다고 섣불리 참여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이라크에 신정부가 들어서고 경제가 정상화되면 신정부가 한국을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국내 기업의 참여도가 결정될 것입니다. 따라서 미국뿐 아니라 이라크 과도정부와 네트워크를 잘 이뤄야 합니다.

▶사회=마지막으로 파병을 위해 정부와 정치권이 준비해야 할 것을 점검해보죠.

▶李교수=파병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파병에 대한 책임은 국회와 정부가 공유해야 합니다. 따라서 국회는 파병을 정쟁의 대상으로 이용하면 절대 안됩니다. 또 주한미군 재배치, 단계적 감축문제 등이 불거지고 있는데 이 사안들도 파병과는 무관하다는 점을 정부는 분명히 해야 합니다. 이것을 파병과 연관시키면 이라크에서 사상자가 날 경우 반미시위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파병에 찬성한 의원들조차 철군을 주장하는 사태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宋실장=파병을 결정한 만큼 정부는 조속히 일정을 진행해 가야 합니다. 미군이 한국군과 대체를 희망하는 모술지역의 제 101공중강습사단의 교체 시기가 내년 2월 말로 예정돼 있어 남은 기간은 4개월 정도뿐입니다. 다음달에 2차 조사단을 보내고, 그 후 국회 동의를 거치면 이미 늦습니다. 파병인원 선발, 훈련, 장비 이동 등에 최소한 10주 이상 걸리기 때문입니다.

▶朴위원=우려되는 것은 파병된 병력 가운데 사상자가 나면 국내에서 파병 반대 여론이 힘을 얻고 그 결과 경제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정부는 이를 대비해 대국민 설득방안을 미리 생각해야 합니다.

정리=강찬호 기자<stoncold@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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