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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국서 온 무일푼 청년들 최고 요리사로 키워내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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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영국의 천재 요리사 제이미 올리버. 그는 음식을 만들 때 가장 행복해 보인다. [중앙포토]

65억 인구가 살아가는 지구촌에는 갖가지 삶과 문화가 있다. 런던의 요리사에서 도쿄(東京)의 회사원, 뉴욕의 청년재벌, 요르단의 불법 체류자, 이라크의 신세대 경찰관까지…. 그들의 꿈과 희망을 소개한다.

영국 런던 중심가에서 북쪽으로 살짝 벗어난 올드 스트리트 전철역 인근 레스토랑 '피프틴(Fifteen)'은 찾기가 쉽지 않았다. 큰길에서 접어들어간 좁은 골목길 끄트머리 허름한 4층 벽돌 건물에 작은 간판이 붙어 있었다. 지난 주말 어렵사리 찾아간 식당은 이미 내년 1월까지 예약이 꽉 차 있었다.

피프틴은 젊은 꿈이 익어가는 곳이다. 좋지 못한 환경에서 자라 가진 것 없는 젊은이 15명이 일류 요리사의 꿈을 키우고 있다. 그들의 요리선생이자 '롤 모델'(본받고 싶은 인물)은 이 식당의 주인 제이미 올리버(28). 세계적으로 유명한 요리 프로그램 진행자이자 일류 요리사인 '네이키드 셰프(Naked Chef)'의 주인공이다. 우리나라 요리 전문채널에서도 그의 프로그램을 방송하고 있다.

식당은 지난해 11월 올리버의 '요리사 꿈 나눠갖기' 프로그램에 따라 문을 열었다. 런던 동부의 가난한 집안에서 자란 올리버는 세계적인 요리사로 성공하자 자신이 이룬 꿈을 불우한 후배들에게 나눠주기로 마음먹었다. 직업도 없고, 요리 경험도 전혀 없는, 그러나 젊고 의욕적인 청년(20세 전후) 15명을 선발해 9개월간 무료로 요리를 가르쳐 자력갱생의 길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1층은 간단한 술과 음료수를 파는 바(Bar), 식사를 할 수 있는 레스토랑은 지하에 있다. 등에 '15'란 숫자를 새긴 흰색 셔츠를 입은 젊은이들이 분주하게 음식을 나르고 있었다. 이집트 출신 니노 엘하디(25)는 요리사 후보의 꿈을 안고 왔지만 선발되지 못해 웨이터로 일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15명을 뽑는 데 무려 3만명이 몰렸다.

엘하디는 "외국인 손님, 특히 호주와 캐나다 등에서 오는 손님이 많다. 최근엔 일본인도 눈에 띈다"고 말했다. 해외에서 방영된 올리버의 프로그램을 시청한 외국인들이 그의 손맛을 직접 느끼려고 이곳을 찾아오는 것이다. 그러나 예약없이 찾아온 대부분의 외국인은 식당의 자리를 얻지 못하고 바에서 음료수와 스낵만 먹고 돌아서야 한다.

점심시간이 끝나가는 오후 3시쯤 올리버의 열다섯 제자 가운데 하나인 조니 브로드푸트(19)를 만났다. 앞치마를 두른 채 주방에서 나온 그의 왼쪽 손가락엔 일회용 밴드가 붙어 있었다."힘들지 않으냐"고 묻자 "일이 쉽지는 않습니다. 중간에 나간 사람도 있죠. 하지만 나는 언젠가 내 식당을 가질 수 있으리란 꿈을 가지고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고 말했다.

스승 올리버처럼 되고 싶은 마음이다. 스승에 대해 묻자 "1백만명 중에 한명 있을까 말까 한 천재"라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고기와 야채를 고르고 다루는 요리솜씨, 튀면서 번득이는 아이디어와 말솜씨, 그리고 어려운 처지의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준다는 아름다운 마음씨까지.

아직 앳된 얼굴의 브로드푸트는 호주 출신이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진학을 포기한 상태에서 런던에 배낭여행 왔다가 친구로부터 올리버의 제자 선발 얘기를 들었다. "운명과 같은 행운이었죠.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는데, 마침 올리버가 바로 그런 사람을 찾고 있었으니까요. 정말 적절한 시점에 적절한 장소를 찾은 셈"이라고 했다. 앞으로 2~3년 내 주방장 독립이 당장의 꿈이다.

음식값은 싸지 않다. 전채와 후식까지 기본 음식값이 1인당 최소 10만원. 딸이 이 식당을 추천해 들렀다는 나이젤 트루스코트(47)는 "싸진 않지만 음식값이 아깝지는 않습니다. 좋은 일에 쓰는 거니까요"라며 웃었다.

런던=오병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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