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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Blog] 따옴표 안에 못 담아낸 그 배우의 매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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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인터뷰(interview)의 어원을 단순무식하게 짐작하자면, '속을(inter) 본다(view)'겠죠. 뭐, 그 때문이 아니더라도 인터뷰를 하자면, 때로는 그 사람의 속내를 파고들어 평전이라도 쓸 것처럼 질문을 준비하기도 합니다. 발생 사건에 대한 브리핑을 일문일답으로 옮기는 게 아니라 인물 자체를 부각시키는 인터뷰일 때가 그렇지요. 물론 주관적인 인물평을 '인터뷰'로 부르지는 않습니다. 형식상 인터뷰에는 그 인물의 말을 따옴표로 직접 인용하게 마련입니다.

영화계 사람 중 말 잘하는 편을 들라면, 영화감독이나 제작자입니다. 남을 설득해 일을 추진하는 직업상 특성이 크겠지요. 쉽게 떠오르는 예가 신작 '라디오 스타'를 내놓은 이준익 감독입니다. '왕의 남자'개봉 전에 처음 만났는데, "팔리면 상품, 안 팔리면 예술" "재테크가 아니라 빚테크" 등등 대구를 이루는 그의 화법은 고스란히 기사제목으로 옮기고픈 욕구를 느끼게 할 정도였습니다. 물론 기사의 핵심이 그게 아니라서 안 썼지만요.

이 반대편이라면, 배우를 꼽겠습니다. 연륜이 쌓일수록 말 잘하는 배우들이 많습니다만, 가끔은 아무리 긴 질문을 던져도 요지부동 단답형 대답만 돌아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때는 배우라는 업종의 특성 역시 되돌아 보게 됩니다. 배우의 주업인 연기력은 이성과 계산만으로 빚어지는 것이 아니라, 감성과 본능이 결합된 화학물질 같다는 거죠.

배우의 또 다른 자산인 매력도 비슷합니다. 단순한 외모가 아닌 것은 물론이고, 이제까지 극중 배역의 누적으로도 치환할 수 없는 종합적인 품목이지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특히나 '따옴표'로 쉽게 묶이지 않는 것일 때가 종종 있습니다.

2주 전 배우 이나영의 인터뷰 기사를 쓰면서 느낀 고민이 그랬습니다. 인터뷰 자체는 퍽 순조로웠습니다. 지난해 가을, 그녀가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 문유정 역할을 놓고 얼마나 고민을 했는지 미리 들었던 게 도움이 됐죠. 그 고민을 어떻게 발전시켰는지 질문과 답으로 되짚으면서 이 영화에 담은 진심 어린 노력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영화에 발산된 이 배우의 매력이 바로 그 '따옴표'로 붙잡기 어려운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걸 인터뷰 형식 곧이곧대로 소화하자면, 질문이 '당신이 왜 매력적인지 200자 원고지 10장 분량으로 설명하라'가 돼야할 판이었죠.

고민은 많았지만, 결국 배우의 말을 중점적으로 옮기는 방법으로 기사를 썼습니다. 그리고 남들에게 말 못할 후유증을 한 일주일쯤 겪었습니다. 이 경우라면, 기사 형식을 달리하는 게, 혹은 차라리 사진 위주로 쓰는 게 낫지 않았을까 되새김질을 하면서요. 남의 속을 보려다가 이렇게 가끔은 내 속이 타는 일이 인터뷰인가 봅니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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