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크로스 오버' 심포지엄] 자본과 상품 논리에 굴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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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19세기 이후 서양에서 잉태된 모더니즘 음악은 대학.콘서트홀 등 제도에 편입되면서 박제화돼왔다. 상층 계급의 교양을 위한 보조물로,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기 위한 장식물로 전락한 것도 사실이다. 이에 반해 대중예술은 언제.어디서나 접근 가능한 '살아 있는' 예술이다. 일상 속에 깊이 들어와 있기에 쉽고 친숙한 존재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크로스 오버를 환영한다. 크로스 오버는 전통문화와 현대문화, 서구문화와 제 3세계 문화, 중심과 주변 문화의 교차와 공존을 이야기하면서 문화의 공간을 민주화한다. 크로스 오버는 수직적 서열 구도의 와해와 직결되는 개념이다. 고급과 저급의 크로스 오버를 통해 도달하고자 하는 것은 모든 문화의 대중문화화다.

크로스 오버와 포스트모더니즘은 전통적인 미학이 만들어 놓은 서열을 거부한다. 하지만 예술과 문화에서 즐거움(쾌락)을 강조하다 보면 결국 문화와 예술의 소명을 포기하고 자본과 상품의 논리에 완전히 굴복하는 것은 아닐까.

또 포스트모더니즘과 함께 대중예술의 힘이 강력하게 발휘되는 것은 '문화적 귀족주의'의 전통이 존재하지 않는 다민족 사회인 미국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미국이 강력한 정치적.경제적 권력의 중심이 놓여 있다고 해서 크로스 오버와 포스트모더니즘을 전 지구적인 담론으로 끌어올리는 것은 무리다. 다국적 문화산업이 전 세계 문화를 식민화하려는 전략을 숨기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오늘날 끔찍한 세계 정황은 문화다원주의가 근거 없는 미혹임을 방증한다. 크로스 오버에서 세계문화의 미국화.대중문화화라는 욕망을 읽을 수 있다.

양효실<서울대 미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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