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출정식에 나선 소년(촛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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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제가 4학년되던 해,어머니는 저의 학원비라도 벌어야겠다며 한국피코에 들어갔습니다.』
11일 오후 7시50분쯤 부천시 삼정동 264 한국 피코운동장.
체불임금을 받기 위해 미국인을 상대로 1년 2개월여 투쟁(?)해온 근로자들-주로 아주머니들-이 모여 「미국출정식」을 갖고있는 자리에 결코 근로자일수 없는 앳된 소년이 등단했다.
미국출정 대표단장인 유점순 한국 피코 노조위원장의 외동아들 지용승군(12·삼정국교 6년)이 공책 3장에 깨알같이 적은 「송별사」를 또렷또렷 읽어내려갔다.
『작년 3월 미국인 사장이 아주머니들에게 일을 시키고 돈도 안주고 도망간 후부터 저희집은 화목한 가정에서 우울한 가정으로 변했습니다.』
장내가 숙연한 분위기로 변했다.
『어머니께서는 자주 집을 비우시고,백골단한테 매맞고 들어오시는 날은 어머니 모습이 엉망진창이었습니다.』
아들의 송별사를 듣고있는 유위원장은 연신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고 있었다.
『미국인사장이 밉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피코일 때문에 싸우실때 더욱더 공부하기가 싫었습니다.
미국까지 가야만되는 어머니가 불쌍하고 눈물이 나지만 건강한 모습으로 다녀오길 바랍니다. 피코 아주머니들 께서도 끝까지 이기세요.』
5분 여간의 낭독을 끝낸 지군이 어머니 옆자리에 의젓하게(?) 앉아 전방을 주시하는 모습에서 오늘날 우리나라 노동계의 어두운 한 단면이 비쳐지고있는 것 같았다.
아들과 부인의 모습을 차마 바라볼수 없어 식장 밖에 서있던 지흥선씨(39·상업)는 『월급 올려달라는 요구도 아닌데 일한 대가는 주어야 할게 아니냐』고 기자에게 분한 마음을 하소연했다.
『이 땅이 뉘땅인데 양키놈이 판을 치냐.』
『눈물로 뿌린 투쟁,미국가서 승리하자.』출정식에 참여한 근로자들의 잇따른 구호가 밝은 달과 별이 빛나는 부천 하늘로 메아리지고 있었다.【부천=김정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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