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고의 경비원에 사랑의 성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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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울 엄마 계세요.』
『시장에 다녀오신다고 열쇠 맡겨놓으셨다.』
『어휴, 장을 많이 봐오셨네요. 들어드릴께요.』
『고마워요, 아저씨. 가락동시장에 나간 김에 좀 많이 샀나봐요.』
시멘트 벽이 이웃을 단절해놓은 아파트생활에서 그나마 드나들때마다 정담이라도 나눌수있는 이웃인 아파트 경비원아저씨.
그 이웃이 암선고를 받았다.
그러자 아파트주민들이 우리의 이웃이 겪는 불행을 조금이라도 덜자고 힘을 모았다.
서울광장동 극동1차아파트 2동1·2호라인 주민 28가구.
자신들의 선행이 아파트관리소의 제보로 외부에 알려진 것조차 꺼리리는, 「왼손이 한일을 오른손이 몰라야 한다」고 믿는 이웃들이다.
1·2호라인 경비실을 6년째 지키던 이석우씨(53)가 폐의 곁표면에 암세포가 생겨 퍼지는 「상피성 폐암」진단을 받은 것은 지난달 4일.
겨울부터 기침이 나고 가슴이 아파왔지만 감기려니 여기고 약을 사먹는 것으로 견뎌봤지만 심해지기만 했다.
주위 동료들의 권유로 한양대병원을 찾았다.
『앞이 캄캄하더군요. 초기단계라서 빨리 수술을 받으면 완치할수 있다지만…. 제 형편으로 수술비를 감당할 길이 없었습니다.』
사근동 달동네의 3백만원짜리 방두칸전셋방에서 8순노모와 정신질환을 앓는 동생, 그리고 부인과 두아들등 여섯식구의 가장.
더구나 못배운 한을 풀려고 맏아들이 올해 대학에 진학, 입학금까지 빚진 처지였다.
『내가 살려고 하면 가족들이 다 죽게된다며 버티는 그이를 울면서 설득했어요. 우선 방사선치료를 받게하고 가족들이 거리에 나앉더라도 전세금과 퇴직금으로 수술비용을 마련할 생각이었습니다.』
부인 현민숙씨(48)는 요즘 아파트청소원으로 나간다.
이씨가 갑자기 사표를 내자 이상히 여겼던 경비원동료들은 병원에서 의료보험처리를 위해 관리사무소에 보낸 서류를 보고야 이유를 알았지만 비슷한 처지인지라 달리 손을 쓸수가 없었다.
이씨가 출근치않고 근무자가 바뀌자 반장 정인숙씨(38)가 수소문끝에 이씨의 사정을 알게됐다.
『워낙 사는 것이 단절되고 개별적인 탓에 괜히 돕자고 나섰다가 구설수에나 오를까봐 망설였어요. 하지만 이웃을 돕자는 일에 뭐그리 욕들을 일이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어 임시반상회를 열기로 했죠.』
정씨의 염려와는 달리 반상회에 모인 20여명의 주부들은 생활비를 쪼개서라도 이씨의 수술비를 마련해주어야 한다며 그자리에서 돈을 모았고 반상회에 참석하지 못한 주민들은 전해듣고 정씨집으로 찾아가 성금을 전달했다. 1백만원이 넘는 돈이 모였다.
지난달말 성금은 이씨가족에게 전달됐고 이씨는 일정이 잡히는대로 수술을 받게됐다.
『다른 아파트에서는 임금인상문제로 주민과 경비원사이에 감정싸움까지 벌인다는데…. 주민·경비원 모두가 이웃입니다. 아파트생활이 각박하다고 하지만 결국 마음의 문을 닫았기 때문이 아니겠어요.』
관리사무소장 이우시씨(53)의 말이다. <이효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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