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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정운영 논설위원 1주기 유고집 펴내 경제학을 위한 마지막 '변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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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선생은 '노동 가치 이론 연구'의 후속작을 구상하여 2년 전쯤 원고를 거의 완성하셨다. 그러나 불의의 사고로 결국 출판이 미뤄지고 말았는데, 아마 마지막까지도 못내 아쉬워하셨을 것이다.'1년 전 한신대 국제경제학과 윤소영(52) 교수가 쓴 글이다. 글 중의 '선생'은 지난해 9월 24일 세상을 등진 고 정운영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경기대 교수)을 가리킨다. '불의의 사고'란 피땀 흘려 쓴 원고 파일을 잃어버린 일이었다.

잃어버린 줄만 알던 원고 파일이 기적처럼 되살아났다. 그리고 작고 1주기를 맞아 책으로 묶여 나왔다. 저명한 진보성향의 경제학자이자 저널리스트였던 고인의 추모식을 겸한 유고집 출판기념회가 18일 오후 4시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평생 동안 긴 허리 굽히려 아니한 그대…"

김초혜 시인이 추모시를 낭송했다. 소리꾼 장사익씨는 추모곡을 불렀다. 고인의 생전 모습을 담은 동영상도 상영됐다. 출판 기념회에는 본지 권영빈 사장 겸 발행인, 강철규 전 공정거래위원장, 김정남 전 청와대 수석비서관, 소설가 조정래씨, 가수 조영남씨, 유승삼 전 대한매일 대표, 최철주 전 중앙일보 상무, 정춘수 전 중앙일보 기획위원 등 80여 명이 참석했다. 한겨레 신문 대표를 지낸 권근술 한양대 석좌교수가 "우리 시대 가장 뛰어난 지식인의 미완의 삶이 가슴 아프다"며 회고사를 낭독하자 눈물을 떨구는 이도 있었다.

이날 고인이 남긴 두 권의 유고집 '자본주의 경제산책' '심장은 왼쪽에 있음을 기억하라'(이상 웅진지식하우스)가 한꺼번에 출간됐다. '심장은…'은 중앙일보 논설위원으로 재직하면서 본지에 연재한 칼럼 등을 엮은 고인의 아홉 번째 칼럼집이다.

"스스로 정결함을 나타내는 단어가 있다. 이를테면 자유라든가 정의라는 단어가 그러하다"로 시작하는 칼럼 '선비'는 미완성인 채로 고인의 컴퓨터에 담겨 있었다. 신부전증으로 병석에 누운 채 부인 박양선씨의 도움을 받아 구술로 완성한 마지막 칼럼 '영웅본색(본지 2006년 9월 8일자)'도 책에 담겼다. 책 제목은 평소 "인간의 심장은 왼쪽에 있음을 기억하라"는 말로 강의를 마무리한 고인의 말에서 땄다.

고인을 기억하는 이들은 1주기 유고집을 낼 요량으로 칼럼을 묶는 작업을 진즉 시작했다. 그런데 고인의 차녀 유신씨가 7월 자신의 컴퓨터에 저장(백업)된 아버지의 역작을 발견했다. 한 권의 책 분량으로 깔끔하게 완성된 원고였다. 유족은 이 원고를 윤소영 교수에게 전달했다. 7월 18일, 고인이 갖고 있던 경제학 장서 1만5400여 권을 서울대에 기증하고 감사패를 받던 날이었다. 세계 경제와 한국 경제를 경제발전과 세계화의 맥락에서 조망한 이 글은 윤 교수의 손을 거쳐 '자본주의 경제산책'으로 태어났다. 윤 교수는 "칼럼집이 일반 대중을 위한 유작라면 자본주의 경제산책은 경제학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남긴 마지막 강의"라고 말했다.

이경희 기자 <dungle@joongang.co.kr>
사진=안성식 기자 <ansesi@joongang.co.kr>

*** 바로잡습니다

9월 19일자 23면에 실린 '고 정운영 논설위원 1주기 유고집 펴내'에서 출판기념회 참석 인사 중 강철규씨는 전 금감위원장이 아니라 전 공정거래위원장이기에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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