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이슈] 경제 고래들 '환율 싸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6면

"환율은 각국의 경제력을 반영해야 하며 부적절한 환율은 세계 경제 성장에 도움이 안 된다"

14~16일 싱가포르에서 선진 7개국(G7)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들이 채택한 성명이다. 환율 문제가 세계 경제의 핵심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은 매월 무역수지 흑자 기록을 경신하고 있는 중국에게 위안화의 절상을 요구하고 있고, 유럽은 최근 경제 회복에도 불구하고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엔화를 못마땅해 하고 있다.중국 인민은행 총재가 16일 위안 변동폭 확대를 시사하는 발언을 했지만 중국은 지난해 7월의 인위적인 절상 같은 과감한 조치에는 여전히 부정적이다. 여기에 올 들어만 유로에 대해 6% 이상한 하락한 엔화 약세는 또 다른 문제를 낳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미국과 유럽연합(EU)이 대(對)아시아 수출 경쟁력 제고를 위해 아시아 통화 가치 상승 압력을 가중시킬 것"이라며 "환율 문제는 점점 정치 이슈화할 전망"이라고 전했다.

윤창희 기자

(1) 위안화는 사면초가…미국 재무장관 방중 절상 압력

중국 저우 샤오촨 인민은행이 현재 ±0.3%인 위안화의 일일 변동폭 확대를 시사하면서 향후 위안화 추이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특히 19~20일 IMF(국제통화기금)총회에 이어 21일 헨리 폴슨 재무장관의 방중(訪中)이 예정돼 있어 위안화 절상 압력이 고조될 전망이다.

찰스 슈머 등 미국 상원의원들은 지도부에 서한을 보내 9월 마지막 주에 대 중국 환율 보복 법안을 표결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위안화 가치는 지난 5월 달러당 8위안이 무너졌고, 18일 현재 7.9499위안대까지 상승했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중-미간 무역 불균형을 해소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게 미국 측 시각이다.

이에 따라 중국이 지난해 같은 인위적 절상까지는 어렵더라도 위안화 하루 변동폭을 ±0.5~±1.5% 정도 올리는 방식으로 어느 정도 위안화 절상을 용인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게 국제 금융계의 분석이다. 스미토모 미쓰이 뱅킹의 요시코시 테츠오 애널리스트는 "이런 분위기라면 중국 위안화가 연내 7.85위안까지 절상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세계 14개 주요 투자은행은 환율 전망을 통해 내년 8월경 위안화가 달러당 7.1~7.8 위안(평균 7.56)까지 절상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2) 엔화는 EU가 압박 "경제 뜨는데 지나친 약세"

G7 재무장관 회담에서 위안화보다 주목받은 것이 엔화 약세였다. 일본의 경제가 꾸준히 회복되고 있는데도 엔화 약세가 너무 빠른 속도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유럽국가들의 불만이 컸다. 엔화는 유로화에 대해 올 들어 6% 이상, 2000년과 비교해서는 40% 이상 하락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8일 장 클로드 트리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G7 회담에서 "일본이 제로 금리 정책을 중단할 만큼 경제 회복세가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며 "우리는 엔화가 이 같은 상황을 반영할 것이라는 점에 동의했다"는 발언을 전했다. 다니가키 사다카즈 일본 재무장관도 이에 화답해 "엔화 가치는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일본의 경제 상황을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발언에 대해 FT는 엔화가 급격한 하락세를 보이는데 우려를 반영, 각국이 엔화 하락을 막기로 합의한 것으로 해석했다. 조만간 엔화 반등이 가시화할 수도 있다는 점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국내 외환 전문가들은 내년 달러화의 약세 기조와 엔화와 위안화의 강세가 예상되는 가운데 현재 같이 엔에 대한 원의 강세가 계속 된다면 내년 원.달러 환율은 800원대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수출기업 보호를 위해 원-엔 외환시장을 확대해 엔화 가치가 과소 평가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3) 미 "IMF 국제환율 감시 강화해야" 중·일은 "반대"

국제통화기금(IMF)의 환율 감시 기능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 등 세계경제의 불균형 해소가 명분이지만, 인위적인 환율 조정이 있을 수 있다는 점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헨리 폴슨 미 재무장관은 17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IMF 운영위에 보낸 성명에서 " IMF의 지배구조를 개혁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면서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환율 감시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각국의 외환정책이 국제 환율 시스템과 조화를 가져야 한다"며 "IMF가 국가별로 어울리는 환율 정책이 이뤄지도록 규정하는 기능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제안에 대해 국제금융계에서는 1985년 플라자 합의 같은 국제적인 환율 조정까지는 아니라도 환율 문제를 정치적인 이슈로 삼아 재조정하려는 미국의 의도가 드러난 것이 아니냐는 시각을 보이고 있다. 이에 중국와 일본 중앙은행 총재는 즉각 반대입장을 밝혔다. 일본은행의 후쿠이 도시히코 총재는 "국제적 불균형 문제가 환율 규제로만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며 "IMF의 환율 감시 강화가 금융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보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유로국가의 경우 의견이 갈리고 있지만 유로가 달러 및 각종 아시아 통화에 대해 가장 고평가됐다는 불만을 가지고 있어 대체로 미국 쪽 입장에 가깝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