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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방시대에 국민이 할 일(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과소비ㆍ외제선호가 경제를 좀먹고 있다
최근 정부가 밝힌 이른바 경제활성화 종합대책은 부동산을 비롯한 물가전반에 대한 국민의 불안심리를 진정시키는 데는 실패한 것 같다.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만 있는 장바구니속의 체감물가와 정부가 발표하는 물가지수와의 엄청난 괴리는 지수 자체에 대한 불신감만 가중시킬 뿐 믿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한결같이 「큰일났다」고 걱정은 하면서도 그런 물가불안 책임중 상당부분이 국민들 자신의 소비행태에 있음을 간과하고 있으니 탈이다. 물론 나름대로 돈푼깨나 만지는 중산층 이상을 이르는 말이다.
모든 경제정책의 실패나 불안의 책임은 정부의 잘못에만 있고 국민은 그 잘못된 정책의 피해자일 뿐인가. 그렇지 않다.
일반적으로 가장 우려하는 물가불안은 물론 정부의 통화정책 실패에 큰 책임이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바로 국민들의 과소비에서 비롯된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에서는 수요와 공급의 상태에 따라 가격이 형성되는 것이 원칙이다. 부동산의 경우는 투기성가수요까지 겹쳐 마치 널 뛰듯하는 형국이다.
그밖의 물가의 경우도 지금 발생하고 있는 수요가 적절한 것인가에 생각을 돌릴 필요가 있다. 여기서 과소비문제가 제기된다.
최근들어 소비행태가 방만해진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소득증가율보다 지출증가율이 훨씬 앞서고 있다. 먹고 즐기자는 풍조가 팽배하여 외식ㆍ관광산업이 갈수록 호황을 누리고,집은 없어도 승용차는 있어야겠다는 식으로 소비구조가 허황해지고 있다.
경관좋은 곳이면 어디나 리조텔이다,콘도다 해서 위락시설이 수없이 세워지고 불티나듯 팔린다. 공휴일이면 유원지들이 발들여 놓을 틈이 없을 만큼 인파로 붐빈다. 도심을 방불케 하는 차량공해가 시골에도 가득하다.
게다가 외제라면 사족을 못쓰는 버릇까지 겹쳐 승용차ㆍ가구ㆍ침대ㆍ의류ㆍ식품ㆍ과일에 심지어는 쌀까지 외국산을 사먹는 사람도 있다. 이런 바람에 국내에서 생산된 사과ㆍ배ㆍ옥수수ㆍ감자ㆍ우유 등 농축산물이 남아돌고 무더기로 썩어 거름더미에 버려지는 참상이 전국 농가도처에서 속출하고 있다.
여기에 외국관광붐마저 불어닥쳐 엄청난 숫자가 해외도처에 나가서 엄청난 액수의 외화를 흥청망청 써대고 있다.
이런 무절제하고 부도덕한 소비행태는 물가의 앙등은 물론 농촌경제의 파탄을 불러오고 국가경제를 어렵게 할 뿐만 아니라 국민 계층간의 감정적 위화와 갈등을 부추겨 사회불안의 불씨를 제공하고 있다. 이런 방만한 과소비때문에 무역수지가 4년만에 다시 적자로 돌아서고 수입증가율이 수출증가율의 4배에 이르는 불행한 현상을 초래하고 있다. 세계 제4위 채무국이라는 불명예를 벗어나기 시작한 순간에 다시 악화의 길로 되돌아서고 있는 것이다.
국민들의 분수에 맞는 소비,절제있는 소비는 과수요를 진정시키고 따라서 물가의 안정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썩어 버려지는 농축산물때문에 시름에 잠긴 농민의 심정에 털끝만큼의 공감과 동정이라도 느낀다면 미감에 다소 불만스런 점이 있더라도 우리 땅에서 우리 농민이 피땀흘려 재배한 농산물을 먹는 것이 같은 국민으로서 최소한의 도리가 아니겠는가.
우리 제품의 질이 형편없을 때에야 어쩔 수 없었다 치더라도 국산품의 질이 좋아진 현재에도 외국산만 찾는 허영심의 밑바닥에는 자기비하적 열등의식이 잠재해 있음을 본다.
기업도 상도덕을 찾아야 한다. 국민의 무분별한 소비행태에 영합해서 사치성 소비재를 마구 수입해다 파는 행위는 온당한 기업행위라고 할 수 없다. 더군다나 대기업에서 자사 제품과 경쟁관계에 있는 제품을 외국에서 사들여 재미를 보고 자기 제품의 질적 향상이나 품질관리는 등한히 하는 것은 지탄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만연하는 과소비풍조와 홍수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외제상품속에서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사람은 바로 국민들 자신이다. 국제적인 개방시대에 정부가 공식적으로 수입을 규제하고 나서는 일은 상대국으로부터 상응한 반발과 대응조치를 유발하기 때문에 실제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런 처지에서는 국민 스스로가 소비를 절제하고 국산품을 애용하며 외화를 절약하는 자율적 규제력을 발휘해야 한다. 소비자단체나 여성단체등 사회단체들이 이런 취지의 국민운동을 적극 선도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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