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행22년만에 "햇빛"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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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육상장거리의 신화적 존재 에밀 자토페크(68). 52년 헬싱키 올림픽의 영웅 자토페크(체코)가 국내민주화 바람에 힘입어 숙청된지 22년만인 2월 드디어 국민앞에 돌아왔다.
체코국민은 물론이고 세계육상계는 이미 예상했었던 일이지만 자토페크의 복권소식에 새삼 깊은감회에 젖어들고있다.
52년도 헬싱키올림픽에 출전, 5천m·1만m·마라톤등 3관왕의 위업을 달성하면서 소련압제하의 조국 체코국민들에게 희망이자 영웅으로 떠올랐던 「인간기관차」 자토페크는 68년 소련의 붉은 군대가 프라하를 짓밟던날 반소데모대의 선두에 나섰다는 이유로 대령계급을 박탈당하고 거리로 내몰려 청소부등을 전전하며 인간이하의 박해를 받았다.
당시 자토페크가 헬싱키에서 거둔 육상장거리 세부문 우승은 올림픽 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으로 아직까지도 남아있을뿐 아니라 첫 완주한 마라톤에서 세운 2시간23분3초2의 세계신기록도 당시로서는 경이적인 것이었다.
68년 여름 당(당)과 군(군)에서 축출된 「육상영웅」은 그동안 한달이 멀다고 밀려드는 각종 국제스포츠대회의 초청과 서방기자들의 인터뷰 요청도 정부로부터 철저히 차단되었으며 최소한의 생활급만을 받으며 근근이 생존을 영위, 국민적 영웅으로서의 명성도 말살당하다시피 오욕의 세월을 살아야했다.
지난75년 유네스코에서 수여하는 공로메달을 받으러 프랑스에 출국이 허용된것을 계기로 체코당국은 자토페크에대한 핍박을 완화, 체육부관리로 공직에 재등용되었으나 겨우 외국체육문서를 번역하는 정도의 하찮은 업무만 주어졌으며 그나마 82년 60세의 나이로 퇴직한 후에는 더욱 가난과 고독의 나락으로 빠져들어야했다.
그러나 지난해11월부터 체코전역을 강타한 개방·민주화바람은 22년을 음지에서 살아온 자토페크노인에게도 따뜻한 햇살이 비치는 큰 변화를 가져왔다.
지난달 50만시민이 운집한 레트나 플레인스집회에서는 군중들이 『자토페크!」를 연호하며 과거68년 반소시위때 군중들 앞에서 사자후를 토하던 자토페크가 다시 연단에 올라줄 것을 간청하는등 그의 국민적 명성이 망각되기는 커녕 세대를 거치면서도 뜨겁게 살아있음이 입증됐다.
그러나 그는 끝내 연단에 오르지 않았다.
그동안 인고(인고)의 세월이 한때 정열적인 영웅이던 자토페크에게서 정치적 관심과 야망을 앗아간 것일까-.
『민주화된 조국에서 조용히 살고싶다』고 잔잔한 미소를 던지는 단한마디는 지난 22년의 고행이 너무 힘에 겨웠고 이제 그의 나이로선 극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피곤함을 말하는 것이었다.
19세의 나이로 고향 즐린의 신발공장에 취직, 공장지배인의 강권으로 시내관통달리기에 참가해 2위를 차지한 자토페크는 45년 육군에 입대해 전문 장거리선수로 조련받아 48년 첫출전한 런던올림픽 1만m에서 우승, 체코인으로서 첫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되었으며 52년 헬싱키에서 3관왕으로 등극, 올림픽과 세계육상계의 역사에 영원한신화의주인공으로 기록되어있다.
체코 체육부장관은 지날달초 그의 집을 방문해 지난68년 강제 퇴역시킨 과오에 대해 국민에게 공개사과하고 정부도 그간의 국민감정을 고려, 상당한 대우를 해줄 계획임을 밝혔다.
22년간 주둔했던 소련군도 철수를 시작했고 거리의 신문 판매대에도 시민들의 발길이 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마라톤 코스보다 한없이 더 길고 험한 고행의 터널을 달려온 자토페크 심장쇠약으로 「말술」도 끊고 프라하북부 나드 카잔코의 언덕에 있는 자택에서 조용히 여생을 마감할 준비에 들어갔다. 거리에서 연일 들려오는 민주화 함성은 필경 그에게 안식과 괴로움을 함께 느끼게 해줄것이다. <신동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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