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 지역 세입자 대책 ″갈팡질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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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정부의 근시안적인 재개발지역 철거세입자 대책이 우선 세입자를 몰아내고 보자는 미봉책에 불과해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
세입자 철거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남발하는 특별법제정·조례 개정 등 「뚫린 둑 손가락으로 막기」 식 대책은 속으로 곪아 들어가는 환부에 대해 외상치료만 하는 꼴이라는 것이다.
더구나 남발하는 정부대책은 세입자들에게 『조금만 더 버티면 새로운 대책이 나올 수밖에 없다』 는 심리를 자극, 힘으로 밀어붙이려는 집단민원의 원인을 제공해주고 극약처방의 강도만 높이는 선례를 남기고있다.
◇특별법=86년 11월29일 정부가 내놓은 공공용지취득 및 손실보상에 관한 특별법 제정은 빤한 속셈을 드러낸 대표적인 사례.
이 법은 주택조합 아파트를 건립한 뒤 세입자에게 8평 짜리 방 한 칸을 특별분양권 이란 명칭으로 우선 분양 받게 해주거나 경제적으로 분양을 받을 수 없는 세입자에게 4인 가족 기준 3개월 분의 최저생계비 1백80만원을 서울시가 주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입자로서는 평당 2백 만원이 넘는 분양가를 마련한다는 것은 애당초 생각할 수도 없고 24평형 아파트에 방 한 칸씩을 얻어 3가구가 함께 산다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이주 대책비를 받아 또 다른 철거민 촌으로 옮겨갈 수밖에 없는 악순환을 되풀이하고 있다.
◇조례=서울시는 89년5월1일 주택건설법 조례를 개정, 조합아파트 건설에 따른 개발차익의 일부로 반드시 소규모 임대아파트를 함께 지어 세입자 문제를 해결토록 했다.
현재 서울신림동과 금호1∼4지구, 행당 1·2지구 등 89년 하반기부터 결성된 주택조합이 건설하는 지역에서는 임대아파트가 함께 지어질 예정이다.
그러나 이 법은 89년 이전에 철거가 시작된 서울시내 1백여 지구에는 적용되지 않아 세입자들은 『특정지역에는 임대아파트 혜택을 주면서 나머지는 1백80만원을 받고 나가라는 것은 애당초 형평에 어긋난다』며 철거를 거부해왔다.
◇철거반대=서울 돈암동606, 616일대 재개발지역 분규는 정부의 잇단 세입자대책의 근시안적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세입자 1천8백여 가구는 86년 가옥주 1천6백 가구가 조합을 결성할 때부터 철거를 거부,철거반원들과 유혈충돌까지 빚었다.
이 때문에 이 지역은 조합설립 후 8백38동이 철거되고 나머지 7백여 동은 그대로 남아오다 이주 대책비에 동의하지 않은 철거민 5백여 가구에 임대아파트를 주기로 합의, 형평이 어긋나는 양상을 보였다.
이같은 임대아파트 입주자격 소급적용은 다른 지역 문제해결에도 장애요인으로 등장할 우려가 높다.

<김종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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