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코트 '소인' 36년 뒤 금융계 '거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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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불굴의 의지를 갖고 꾸준히 한 우물을 판다면 성공이 결코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오늘의 영광은 지난 36년간 노력의 대가죠."

이달 초 SC제일은행 부행장으로 승진한 김선주(54)씨. 한 은행에서 행원으로 출발해 부행장에 오른 여성은 그가 처음이다.

그는 "존 필메리디스 은행장이 최근 '앞으로 한국인이 은행장을 맡을 수도 있다'는 말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다"고 했다. 그의 야무진 꿈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김 부행장은 1970년 제일은행에 입사했다. 당시 그는 농구 명문인 숭의여고를 갓 졸업한 18세 소녀였다. 고교시절 청소년 대표선수로 활약하는 등 농구선수로서 두각을 나타냈었다. 이 은행에 농구 선수로 입사한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1년 남짓 선수로 뛰다가 은행원으로 변신했다.

"키가 163㎝ 밖에 되지 않아 뛰어난 농구선수가 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어요. 그래서 직업을 바꾸기로 결심하고 평생 직업으로 은행원을 선택한 거죠."

당시 여행원들은'전직 고시'에 합격해야 남성과 동등한 대우를 받는 정식 행원이 될 수 있었다.

또 결혼과 동시에 퇴사를 하겠다는 각서도 써야했다. 어느 직장보다 남녀차별이 심했던 조직이었다.

그는 어렵게 행원 자격을 얻은 뒤 밤낮 없이 일에 매달렸다고 한다. 그 결과 81년에는 남자 동기들을 제치고 여성 최초의 대리가 됐다. 남자 동기들이 노조사무실로 몰려가 항의할 정도로 파격적인 인사였다고 한다. 95년에는 여성 최초의 영업점장도 맡았다. 서울 고덕출장소였다. 출장소는 분양도 안된 상가 2층 구석에 있었다. 고객이 없는 것은 당연했다. 그는 출장소 약도를 인쇄한 전단지를 들고 아파트 부녀회와 인근 상인들을 찾았다. 발이 닳도록 뛰어다닌 결과 1년 뒤에는 전국 출장소 중 실적 1위에 올랐다. 2001년 신사 중앙지점장으로 부임했을 때다. 당시 신사동에는 비슷한 이름의 제일은행 지점이 서너개가 있었다고 한다. 차별화가 필요했다. 그래서 그는 7개월 동안 본사를 설득해 지점 이름을 '로데오 지점'으로 바꾸기도 했다. 그의 인생은 변화의 모색과 도전으로 이어졌다.

그는 50대 중반에 이르렀지만 아직 미혼이다. 독신주의를 고집하진 않았지만 바빠서 결혼을 못했다고 한다. 김 부행장은 "2008년까지 현재 403개인 영업점을 520개 이상으로 확대해 8% 수준인 시장점유율을 두배로 늘리는 것이 목표"라며 "대형 할인점 입점과 모바일 뱅킹 활성화로 고객의 요구에 부응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글=최익재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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