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의사 80주기(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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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 인간의 모든 생애가 고스란히 조국에 바쳐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 생애의 어느 한순간이라도 자신의 명예나 욕망에 사로 잡히지 않고 오직 조국만을 생각한다는 것은 더욱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1910년 3월26일 중국땅 여순감옥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안중근의사는 「애국자」라는 통속적인 표현이 오히려 초라함을 느끼게 한다.
하얼빈 역두에서 대륙침략의 원흉 이토히로부미(이등박문)를 저격한 안의사의 의거를 일본인들 입장에서 보면 피압박 민족의 일개 테러행위라고 생각할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일본의 검인정 국사교과서에서는 한때 안중근의사를 「장사」라는 묘한 어휘로 기술한 일이 있었다.
「장사」라는 낱말이 우리나라에서는 그저 「기개와 체질이 굳센 사람」을 일컫지만 일본어에서의 뉘앙스는 좀 다르다. 일상적으로는 「씩씩한 남자」의 뜻으로 쓰이지만 「폭력이나 협박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건달」이란 또다른 뜻이 숨겨져 있다.
그들은 겉으로는 안의사를 「씩씩한 사람」으로 표현하는 것처럼 내세우면서 속마음으로는 「건달」이라고 깍아내리고 싶었던 것이다. 일본의 이중성을 단적으로 드러낸 대표적인 예다. 물론 한국의 항의를 받고 뒤늦게 「지도자」로 고치긴 했지만….
그러나 일본정부의 그런 얄팍한 속셈에도 불구하고 일본에는 안중근의사를 숭모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안의사가 여순감옥에 있을 때 그를 줄곧 감시하며 순국까지 지켜본 한 일본헌병상사 지바(천엽십칠)씨는 안의사의 숭고한 조국애와 인간에 감복한 나머지 안의사를 가신으로 삼아 2대째 모시고 있다.
이같은 지바씨의 얘기가 알려지자 일본에서는 「국적을 떠나 그의 애국심과 고매한 인격을 기린다」는 글과 함께 안중근의사의 기념비를 세우기도 했다.
『안중근』이란 책을 쓴 나카노(중야태웅)교수는 안의사의 재판을 「곡판」이라고 서슴없이 표현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그는 여러 재판기록을 들쳐본 결과 이등박문의 저격사건은 오히려 『죽음을 당한 자에게 죄가 있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26일은 안의사의 80주기. 자기의 조국을 사랑한다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안의사는 죽어서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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