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사업가로 성공한 '러브하우스'의 양진석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2001년 '러브하우스'에 출연해 대중의 사랑은 받았죠. 하지만 그 대가는 참 혹독하더군요. 건축계와 인테리어계가 냉담한 반응을 보일 건 익히 예상했지만 고객까지 외면할 줄은 몰랐습니다. 방송을 하면서 일이 완전히 끊겼거든요. 이제는 웃으면서 말할 수 있지만 지난 2년간 정말 힘든 시기였습니다."

MBC-TV 오락 프로그램 '일요일 일요일밤에'의 집 지어주는 코너 '러브하우스'에 개그맨 신동엽씨와 함께 나와 인기를 모았던 건축가 양진석(梁珍錫.38)씨를 오랜만에 만났다.

방송 당시 조그마한 건축회사 '양진석 건축연구소'를 운영하던 梁씨는 코스닥 등록기업인 토털 인테리어 업체 룸앤데코와 합병해 최근 대표이사에 취임했다. 또 미국의 세계적인 건축회사인 Y그룹의 한국지사격인 Y그룹 건축사사무소 공동대표도 맡았다. 게다가 2년 전부터는 한양대 건축학부 겸임교수로 출강하고 있다.

직함만 번드르르한 게 아니다. 유명 건축가가 모두 참여하고 있는 파주의 헤이리 아트밸리 안에서 1만2천평으로 가장 규모가 큰 복합문화단지 '헤이리 더 스텝'과 서울 청담동 진흥빌라 재건축 프로젝트도 따냈다. '러브하우스' 방송 당시 건축계의 비아냥 속에 실력없는 건축가로 오해받았던 2년 전과 비교해보면 그가 이룬 성과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일요일…'의 김현철PD가 '러브하우스'를 제안하면서 부작용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더군요. 고민 끝에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해 하기로 결정했죠. 제가 명색이 박사(일본 교토대)인데 TV에 나와서 웃기는 게 왜 부담이 없었겠어요. 다만 웃음 뒤에 내 작품이 있고, 그 작품이 설득력이 있을 거란 확신이 있었기에 출연할 수 있었죠."

신동엽씨를 웃길 정도로 재치있는 입담과 가수로 인정받고 싶다는 좀 엉뚱한 꿈을 드러내며 스스로를 희화화했기 때문에 인기는 얻었지만 실력과는 무관하게 건축가로서 이름을 올리고 싶은 괜찮은 프로젝트와는 인연이 멀어졌다.

그래서 "방송이 적성에도 맞고 너무 재미있지만" 방송사 개편 시즌마다 들어오는 캐스팅 제의도 독하게 물리치고, 지난 2년 동안은 오직 본업에만 몰두했다.

"기업인 이미지를 보여주려고 TV 출연이나 여성지 인터뷰 같은 대중에 노출되는 일은 철저하게 피했어요. 오죽했으면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은데 데이트마저 절제하고 일에만 매달렸겠습니까."

직원들은 여전히 梁대표가 집에는 들어가지 않고 사무실에서 일만 한다며 불만이지만 정작 본인은 "일주일에 한두번은 어떻게든 여자랑 '작업'할 시간을 만든다"고 털어놓을 만큼 여유가 생겼다.

내년 봄에는 김현철PD와 다시 뭉쳐 '러브하우스'에서 슬쩍슬쩍 보여줬던 아이디어 가구를 전면에 내세운 새로운 프로그램도 만들 생각이다. 2000년 발매한 3집 앨범에 이어 4집 음반 작업도 준비 중이다.

梁대표는 "전공보다 음악에 빠져있던 대학 때 아버님께서 '사람은 잘 할 수 있는 것과 좋아하는 것이 있는데 내가 보기에 네가 잘 할 수 있는 것은 건축이다. 지금은 건축공부를 하고, 하고 싶은 건 나중에 하라'며 유학을 권하셨다"는 일화를 소개하면서 "지금 돌이켜 보니 그 선택이 옳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부친의 말대로 건축가로 인정받은 지금, 음악도 맘껏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안혜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