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봉투」가 오가는 교단(교육 이대로 둘 것인가:6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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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담임이 부르면 으레 “준비”/「노른자위」학년 맡기위해 「상납」등 부작용도
서울강남에 사는 김모부인(38)은 지난해 10월 어느날 둘째아들(국교2년)의 담임선생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고 말았다. 『사흘째 아이가 학교에 나오지 않으니 무슨일이냐』는 전화였다.
매일아침 등교시간에 맞춰 어김없이 책가방을 챙겨 집을 나갔다가 하교시간이면 돌아온 아들이 3일동안이나 결석했다니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더욱 놀란 것은 그날 오후.
여느날 처럼 태연히 집에 돌아온 아들을 붙잡고 결석한 이유를 다그치자 『선생님이 청소랑 힘든 심부름을 나만 시키고 미워해 학교가기 싫단말이야…』하며 그만 울음을 터뜨리는 것이 아닌가.
김씨는 그날 밤을 꼬박 새우며 아들이 담임으로부터 「미움」받는 원인을 곱씹어본끝에 다음날 부랴부랴 5만원이든 봉투를 마련,담임교사를 찾아가 사죄하고 『아이를 잘 보살펴 달라』는 부탁을 하고왔다.
이후 담임의 「미움」이 사라지고 김씨의 아들은 다시 활기를 되찾아 지난 2월 무사히 2학년을 마친것은 물론이다.
김씨의 경험은 극히 드문 사례이고 또 이같은 판단이 정확하고 옳았는지의 여부는 제쳐두고라도 대부분의 많은 학부모들이 이같은 앙금의 원인을 쉽게 돈봉투와 연관지을 정도로 우리의 교실에서 돈봉투 거래가 공공연하다.
최근 「참교육을 위한 전국 학부모회」가 전국 학부모 1천9백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77%가 교사에게 돈봉투를 준 사실이 이를 잘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다.
고3딸을 둔 최모부인(43)은 대입원서 작성을 눈앞에 둔 지난해 11월초 『진학상담이 필요하니 한번 오라』는 담임의 연락을 받고 잔뜩 긴장해 학교를 찾았다가 가벼운 충격을 받고왔다.
진학상담실 앞에는 10여명의 학부모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고 담임은 한사람씩 불러들여 상담을 벌이는 중이었다.
그런데 담임교사와 상담을 마친 최씨는 들은 얘기도 있고해 준비해간 10만원짜리 봉투를 꺼내 선뜻 건네지 못하고 망설이다 우연히 담임의 책상밑을 쳐다보니 맨밑의 서랍이 빠끔히 열려 있었다.
담임에게 직접 건네기가 민망스런김에 얼른 서랍속에 봉투를 쑤셔넣으면서 힐끗 안을 쳐다보니 흰 봉투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고 한다.
이같은 교육현장에서의 돈봉투 거래는 아직은 서울등 일부지역에 국한돼있지만 점차 일반화ㆍ조직화되고 있고 이제는 인사치레를 넘어 교사나 학부모가 납세고지서처럼 당연시하는 세태가 되고 있다.
서울P고 신모교사는 『촌지를 받은 선생들은 그 학생들에게 각별한 관심이나 편애,좋은 좌석배치,체벌절감등의 혜택을 주게되고 혹은 예체능계 점수를 잘 맞거나 반장ㆍ부반장등 간부직을 얻게되는 것이 상례』라고 지적한다.
촌지를 주고받는 방법도 각종 기발한 아이디어가 속출하고 있다. 지난해 서울J고 고3반의 경우 상위권학생 어머니 10여명이 매달 15일 담임교사와 함께 저녁 회식을 갖고 정기적으로 50만원이 든 「보너스봉투」를 제공했다.
이같은 직거래의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 요즘은 은행온라인 송금이 애용되고 있는 실정. 서울K고의 경우 학급간부의 어머니가 중심이돼 일부 학부모로부터 매달 일정 금액을 온라인 예금구좌로 모은뒤 이를 다시 담임교사의 온라인구좌에 재송금해 주었다는 한 학부모의 실토다.
봉투의 부피도 점차 두꺼워져 얼마전까지 3만원 안팎이던 서울강북지역의 「기본요금」도 최근에는 5만원으로 올랐다.
특히 촌지액수는 서울과 지방,서울의 강남과 강북이 차이가 나게 마련이고 여의도ㆍ압구정ㆍ개포동등 지역에 따라 정액화되어 있으며 심지어는 한 학급안에서도 학생들이 사는 아파트크기에 따라 단가가 매겨져 있다는 어느 학부모의 지적이다.
이와 함께 학년별로도 국민학교 1,2학년과 고3이 교사들간에는 소위「노른자위」로 통하고 어린이회장과 학교임원,예체능계 지망학생의 경우 한번에 1백만원 이상의 「뭉칫돈」을 안기는 학부모도 더러있다.
이때문에 일부학교에서는 새학년 초때는 전임ㆍ후임 담임간에 「거물급」학생의 인수인계가 은밀히 진행되기도 한다는 교사들의 귀띔이다.
돈봉투는 결국 학년에 따라,또 담임과 비담임과의 소득격차를 가져와 교사들간에 위화감을 조성하고 따라서 「노른자위」학년의 담임을 맡기위해 교사들사이에 「전쟁」이 일어나고 한번잡은 노른자위를 지키기 위해 교장ㆍ교감에 대한 상납등 또 다른 부작용이 일고 있다.
이같은 학교에서의 돈거래는 비단 학부모들에 의한 봉투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중ㆍ고교에서는 교과서와 부교재 채택을 둘러싸고 학교ㆍ교사와 출판업자 사이에 금품거래가 공공연하고 졸업앨범이나 학습기자재 구입때마다 업자와 학교측이 음성적인 거래를 하고 있는 것은 88년말 점촌고등 잇따른 교사들의 양심선언에서 이미 입증된 바 있다.
88년 11월 YWCA의 조사결과 금전사례 시기가 학년말은 10.1%에 불과하고 학년초(37.1%)나 연말ㆍ스승의 날 (15%)이 많아 돈봉투가 순수한 감사보다는 학부모들의 이기적인 목적이 앞서고 있음이 드러났다.
윤웅섭 교사(34ㆍ전 신천중)는 『젊은 교사들을 중심으로 촌지거부운동이 일고있고 일부 학교에서는 상당한 효과를 보고 있는데 일부 교사때문에 대다수 양심적인 교사가 매도돼서는 안된다』면서 『25년 근무한 교사의 월급이 재벌회사에 갓입사한 아들의 월급에도 못미치는 현실에서 교사들이 돈봉투의 유혹을 떨치기는 어렵다』고 말한다.<정순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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