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후퇴 안될 말”… 민자 내부진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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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일부의원들 실명제 연기방침 적극 제동/보안법등 손질도 시들… 거여노선 기로에
금융실명제 실시보류등 경제정책의 대전환이 임박해지면서 정부와 민자당은 정책변화를 뒷받침하는 논리를 흘리고 분위기를 잡아나가려 하고 있으나 지금까지 표방해온 개혁정책에서 크게 후퇴하는 노선변경을 놓고 상당한 진통이 일고 있다.
21일 첫 당무회의에서 민주계와 민정계 일부 의원들이 개혁정책의 후퇴라는 시각에서 실명제 연기방침에 제동을 걸고 나섬으로써 개혁정책 변경을 둘러싼 당내 논쟁이 시작됐으며 이것이 앞으로 정책결정에 어떻게 반영될지 주목된다.
실명제 보류등은 이승윤부총리와 김용환정책의장등 당정 경제책임자간에는 이미 내막적으로 합의한 상태.
그러나 구민주당정책의장이었던 김동규의원은 『금융실명제의 목표가 지하경제의 검은 돈을 흡수,경제흐름을 정상화시키는 데 있다』고 상기시키고 『부작용도 있겠으나 어망을 쳐 큰 물고기를 잡기 위해선 예정대로 실시돼야 한다』고 이의를 제기했다.
김덕룡의원도 『3당통합의 신선한 충격이 사라지고 있다』며 『실명제를 반대하는 장관들이 내각에 많다고 당과 협의없이 실명제를 바꿀 수 있느냐』며 충분한 사전협의 절차를 요구했다.
민정계의 김종기의원도 『실명제가 연기되는 것으로 알려져 국민들이 충격을 받고 있으며 이는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비판쪽에 섰고 최운지의원은 『실명제는 실시하되 부작용을 바로잡자』며 전면보류에 의문을 표시했다.
이들 의원들의 반발과 문제제기가 경제정책 전환의 대세에 제동을 걸기엔 한계가 있는 것이지만 개혁정책수정이 간단치 않음을 확인시켜준 것으로 풀이된다.
문제는 실명제연기라는 보수적 성향이 앞으로 당내의 주조를 형성해 나갈 것이며 이를 노대통령도 보증해줄 것이라는 점이라고 하겠다.
이승윤부총리­김용환 당정책의장 라인은 이른바 구공화파 3공라인으로 당내에 반드시 다수파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경제정책의 기조를 정해 정부가 뒷받침하는 근거나 논리가 무호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민주계출신 의원의 비판적 태도는 과거성향으로 미뤄 있을 법한 것이지만 민정계 일부까지 합세한 것은 이같은 구공화중심 정책전환에 대한 당내 불만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아직까지 금융실명제등 개혁정책의 수정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표명은 없으나 내막적으로 이미 결정돼 있으며 현재상태는 수정의 명분을 찾고 있는 단계라는 게 민자당내부의 대체적 분위기다.
이미 박태준최고위원대행은 전면적인 세제검토 필요성을 제기했고 김정책의장도 『실명제가 유동성자금의 부동산투기등으로의 전환,자본해외유출같은 자금흐름의 왜곡현상을 빚기 때문에 이를 검토하겠다는 것』이라며 실시보류를 시사하고 있다.
이승윤­김용환팀은 실명제를 현상태로 놔두고선 어떤 경기부양의 수단도 효과를 보기 힘들다는 판단을 내려놓고 있는 게 확실하다.
한 관계자는 『새로운 경제종합대책은 단순한 경기부양책이 아닌 환율ㆍ부동산ㆍ통화ㆍ분배문제 등이 상호연관된 패키지(일괄)형태로 제시돼야 한다』며 『이같은 맥락에서 실시연기는 불가피하며 결국 효과적인 명분을 어떻게 제시하느냐가 문제』라고 말하고 있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실명제연기의 논리와 사정이 어떻든 단순한 경제정책의 변경이 아닌 6공개혁노선의 후퇴라는 시점에서 평가될 수밖에 없다. 이것이 대보수연합의 결과라면 지금까지 6공정부가 내세웠던 노선의 변화하고 봐야하는지가 문제다.
사실 금융실명제는 노대통령의 선거공약으로 다시 햇볕을 본 이래 그동안 기회있을 때마다 강조되었고 지난 1월10일의 연두기자회견에서도 『3년 임기동안 경제정의실현을 위한 개혁을 결연한 의지로 추진하겠다』고 다짐한 바 있다.
민자당도 이에 부응하려고 제도개혁없인 체제유지가 어렵다며 실명제를 주장해왔는데 이제와서 부작용을 이유로 후퇴할 때 국민들을 과연 설득시킬 수 있느냐는 내부적인 논리의 자가당착으로 고민하고 있다.
한 당직자는 『지난 2년간 실컷 집권당의 변화하는 모습의 상징으로 떠들고 써먹어온 것을 어느날 갑자기 바꿀 때 국민들이 이를 이해하겠느냐』고 의문을 제기하고 『이는 엄청난 정치적 모험인데 당수뇌부가 너무 경제적 측면에서 접근하려 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미 민자당은 보안법ㆍ안기부법 등의 개정에서 종래의 민정단입장에서도 후퇴하는 듯한 성향을 나타냈고 그들이 그렇게 주장하던 지자제선거마저 야당반대를 이유로 연기시켜 버렸다. 따라서 실명제보류는 이와같은 개혁조치 후퇴의 흐름에서 비판적으로 수용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평민당과 재야쪽에선 『3당통합이 보수회귀임을 분명히 확인시켜 주고 있다』고 공격하고 있고 여 일각에서도 『정치적 비판을 뒤집어쓰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렇지만 민자당은 3당통합의 명분을 실감시켜 주기 위한 방법이 경제회복과 민생치안 완수라는 판단아래 연기방침에서 오는 후유증과 국민들의 반발을 최소화하는데 전력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연기론쪽의 당직자들은 6공의 이미지를 고수할 것이냐,실질적인 실적을 올리느냐의 선택의 문제로 보고 있다.
지난 19일부터 김용환정책의장 주재로 계속되고 있는 각종 경제금융단체ㆍ노총과의 일련의 간담회는 연기명분의 근거를 여론수렴쪽에서 찾으려는 목적에서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금융실명제 연기문제는 6공개혁노선이 기로에 서 있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민자당의 앞으로의 성격규정과도 연결될 것이 확실하다.〈박보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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