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식 경제모델』선망|특사파견·현장답사등 관심대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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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소련과 동구권이 대변혁을 겪고 있는 가운데 이른바 「스웨덴식 모델」이란 말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이들 국가들이 공산주의를 포기하는 대안으로서는 사회민주주의의 전형으로 불리는 스웨덴식 경제모델이 가장 적합하다는 것이다.
이미 체코의 바츨라브 하벨대통렁과 알렉산데르 두브체크국회의장은 스웨덴을 방문, 현장답사를 마쳤으며 유고의 골수공산주의자 관리들이나 폴란드자유노조(솔리다르노시치)지도자들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스웨덴을 칭찬하고 있다. 소련 및 동구개혁의 선봉장 고르바초프는 특사를 파견, 스웨덴경제모델을 연구토록 지시했다.
도대체 「스웨덴식 모델」이란 무엇이길래 이들 나라들이 그토록 기를 쓰고 본받으려 할까.
대답은 간단하다. 공산주의를 포기하고 서쪽으로 눈을 돌리던 이들 국가들에 스웨덴의 국가체제야말로 「인간의 얼굴을 지닌」시장경제를 실현한 완벽한 사례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스웨덴식 모델」이 소련 및 동구국가들에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존재일까. 또 갈데까지 다간 이들 국가들의 경제병을 치료할수 있는 만병통치약일까.
이에 대한 대답은 간단치가 않다. 최근의 정치·경제적 혼란상을 보면 차라리 부정적이기도 하다. 스웨덴을 방문했을때 내각이 총사퇴하는 모습을 하벨체코대통령은 현장에서 목격했다.
스웨덴은 사회복지의 천국으로 항상 거론된다. 문자그대로 「요람에서 무덤까지」 완벽한 사회보장제도가 실시되고 있다. 어린이가 태어나면 부모는 12개월의 유급휴가를 받는다. 이것도 모자라 내년부터는 18개월로 연장된다. 국민의료보험은 입원비 전액을 보전해주며 병으로 근무하지 못하는 기간중엔 소득의 90%가 지급된다.
탁아소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교육비도 저렴하다. 두 종류가 있는 노인연금은 인플레의 영향을 받지 않는 시스팀으로 살아온 기간중 소득이 가장 높았던 15년간 평균소득의 3분의2가 지급된다.
소련·동구인들에게 또하나 매력이 되고있는 부문은 1·4%밖에 안되는 낮은 실업률이다. 개혁주의자들로서는 보수파나 일반대중에게 시장경제를 도입하더라도 많은 실업자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줘야하는 부담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련이나 동구인들은 스웨덴의 성공이 다른 자본주의 국가보다 더 철저한 자유시장경제의 기반 위에서 가능했다는 점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스웨덴의 생산부문에 있어 국유기업의 비율은 7%로 오히려 다른 서구의 평균을 크게 밑돌고 있고 영국에 비해선 절반밖에 안된다. 자유무역도 대부분의 서구국가들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반면 스웨덴이 서구자본주의국가들과 크게 다른 점은 최고 72%에 달하는 조세부담률이다. 새로운 세제개혁안에서는 최고세율이 50%까지 인하되게 돼있으나 그래도 GNP에서 차지하는 세수의 비중은 56%나 된다. 선진국중 최고수준이다.
스웨덴이 이처럼 세금을 많이 거두는 등 사회주의화돼 있는 것은 노인이나 어린이를 위해서다. 『국유의 가정은 있어도 국유기업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 생산수단의 사유화가 걸음마단계에 들어선 소련이나 동구국가들이 스웨덴을 완벽한 사회민주주의의 이상향으로만 보는데는 많은 무리가 있다.
얼마전 칼손총리는 인플레를 잡기위해 임금·물가의 2년간 동결과 파업에 정부의 개입권을 보장하는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하는 긴급경제대책을 의회에서 통과시키려 했으나 야당의 반대로 부결됐고 이에따라 지난달 25일 내각이 총 사퇴했었다.
후에 임금동결안을 철회, 21석에 달하는 공산당의 지지를 얻어내 지난달27일 제2차 내각을 출범시켰으나 전도가 불투명하다. 이번 위기를 사민당의 종말로 보는 성급한 견해도 있다.
스웨덴의 생산성이 아직은 높은 수준이지만 성장속도는 급속히 떨어지고 있으며 임금과 물가상승률은 서구평균의 두배에 달하는 두자리 숫자를 기록하고 있다.
노동자의 결근율도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남용하기가 손쉬운 건강보험제도 때문으로 지난83년 18·4일이었던 평균병결일수가 88년에는 23·4일로 늘어났다. 주간평균노동시간도 31시간까지 떨어졌다. 어차피 정부가 다 보상해주는데 기를 쓰고 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모든 점을 감안하면 소련이나 동구국가들이 스웨덴형 사회복지제도를 실시할 여유가 없다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스웨덴식 모델에 감내하기 어려운 점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된 소련의 개혁주의자들은 일본에서 새 모델을 찾으려하고 있다.
그러나 소련인들이 기적의 나라로 생각하고 있던 일본에서도 완벽한 모델을 찾아내지는 못했다. 그들이 발견해낸 것은 『일본인들은 왜 그렇게 열심히 일하나』하는 의문과 함께 『소련인은 일본인이 아니다』라는 사실뿐이었다.
따라서 공산주의체제가 붕괴되고 있고 어쨌든 이의 대체방안을 찾아야만 하는 소련이나 동구국가들로서는 스웨덴형이든 일본형이든, 아니면 또다른 제3의 형이든 전형을 찾아 국민들에게 비전을 제시해야하기 때문에 고민하고 있다. <유재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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