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피난길이 40년 갈라놓다니… ”/한씨 남매 기자회견ㆍ상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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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아버지 임종때 아들 애타게 찾아”/필화씨 “최고 인민체육인”자랑도
한필성ㆍ홍애자씨부부와 한필화ㆍ임세진씨부부는 공항에서의 굳은 표정과는 달리 기자회견장에는 활짝 웃는 표정으로 도착했다.
때로 농담과 유창한 화술로 기자회견장을 주도하던 동생 필화씨는 4년전 작고한 부친의 말을 전할때엔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소감은.
▲오빠=40년만에 처음 만나니 무어라 말할 수 없이 기쁘다.
▲동생=기대하고 기대하던 만남이다. 19년전에 만나려다 못만났는데 40년만에 만나니 정말 기쁘다.
­헤어질 당시의 상황은.
▲오빠=6ㆍ25가 발발,1ㆍ4후퇴 당시 똑같이 진남포와 사리원까지 와서 서로 피난보따리를 쌀때 『장남이니 사흘간만 피난가 있으라』는 아버지의 말에 따라 피난선을 탔는데 40년이 흘렀다.
­곧 헤어져야 될텐데.
▲동생=꼭 헤어져야만 하는가.
▲오빠=서로 가족이 있으니 헤어져야 될 것이다.
­아버지 돌아가셨을때 유언은.
▲동생=80세로 세상을 떠나셨는데 애타게 큰아들을 찾다 눈을 감으면서 『너희들 통일이 돼 화목하게 잘 살게 될때 내 묘지를 찾아오면 그때 다시 눈을 뜨겠다』고 말했다.
­한필화씨가 떠날때 노모가 무슨 말을 했나.
▲동생=조국을 떠날때 『너는 북한에서도 유명한 여성이니 기자선생님들에게 잘말해 오빠를 만나도록하고 오빠를 만나면 날 대신해 허리굽혀 인사드리라』고 했다. 『나대신 좋은 숙소를 잡아 오빠하고 생활하며 40년 한을 풀라』고 했다. 이제 우리 어머니 소원이 풀렸다.
­한국에는 아직도 이산가족이 많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동생=한가족의 문제가 아니라 민족의 아픔이다. 하루속히 이런 불행이 없어져야 하며 여러분들이 하루빨리 통일이 되도록 도와달라. 우리 어머니는 85세인데 앞으로 얼마나 사시겠는가. 오빠와 함께 여생을 살도록 해달라.
­지난 72년 삿포로 동계올림픽때 왜 서로 만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가.
▲동생=그 당시 내가 오빠를 만나려고 애타게 기다렸는데 남한쪽이 조건을 붙이고 갖은 모략을 해 만나지 못했다. 지나간 일은 말하지 말자.
▲오빠=당시 한국은 자유스럽게 만나도록 했다. 왜 못만났는지 그 당시도 몰랐고,지금도 모르고 있다.
­앞으로 삿포로에서 일정은.
▲오빠=동생이 함께 숙식하며 지내길 원하니 그렇게 할 생각이다.
­필화씨 어머니는 오빠에게 어떤 선물을 준비했나.
▲동생=오빠가 혼자 떨어져 고독하고 힘든 생활을 했을거라며 억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석분화라는 그림을 가지고 왔다. 이 그림은 돌가루로 금강산의 범을 그린 것으로 집안이 흥하고 강하게 해 오빠를 지켜줄 것이다.
­오빠는 어머니에게 어떤 선물을 준비했나.
▲오빠=나는 물베개를 준비했고 아내는 어머니ㆍ동생ㆍ동서 등에게 줄 여섯개의 금반지를 가지고 왔다.
○…이날 한씨 오누이가 40년만에 상봉한 지토세공항에는 한국기자 50여명을 비롯,일본기자 등 1백여명이 몰려 북새통.
특히 일본 현지의 신문ㆍ방송들은 연이어 한씨남매의 특집을 서울ㆍ삿포로 현지에서 마련하는가 하면 필화씨의 동정을 매일 상세히 보도하는 등 지대한 관심.
○…이날 보도진과 한필화씨측은 007작전을 방불케하는 추격전을 전개.
당초 삿포로시내에 있는 선플라워호텔이나 선수촌에서 상봉을 주선하겠다고 남북대표들이 약속했으나 보도진 몰래 지토세공항에서 상봉을 시도한 것.
이날 오후6시 선수촌인 프린스호텔에서 열리는 각국선수단 리셉션에 한필화씨가 참석할 줄 알았던 보도진들은 뒤늦게 공항으로 떠난 사실을 알고는 공항으로 한꺼번에 몰려가느라 일대 소란.
○…한씨 오누이의 상봉을 적극 주도한 것은 조총련측이었다. 북한의 지시를 받은 것으로 보이는 조총련관계자들은 공항까지 바짝 따라다니며 필화씨 부부를 「안내」했고 기자회견장에서도 조총련국제부장 송남우가 통역하는 등 적극 활동해 눈길.
또 이곳에서는 북한이 인도주의적 차원을 대대적으로 선전하기 위해 필화씨를 공항으로 직접 나가게 했다는 관측이 나돌기도.
○…필화씨는 기자회견장에서 한국기자가 남북체육회담에 대해 묻자 『남북체육회담을 반대하는 사람이 많아 성사가 안된다』며 『빨리 잘못을 뉘우치고 북경에 단일팀으로 함께 가도록 회담장소에 나오라』고 정치적 발언을 해 주목.
○…필화씨는 지금 자녀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딸하나를 두고 있는데 64년 인스브루크 동계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땄을때 전세계 언론이 「은반위의 혜성처럼 나타난 스타」라고 불러 이름을 혜성으로 지었다』고 소개.
필화씨는 이어 중학에 다니고 있는 딸이 엄마를 닮아 스케이팅을 잘한다고 말하면서 『오는 95년 삼지연 동계아시안게임에서 만약 혜성이라는 이름이 나오거든 내딸인줄 알아달라』고 농담,주위를 웃기기도.
○…필화씨는 생전 처음 만난 올케의 인상이 어떠냐는 질문에 『참 좋으신 분같다. 오빠 뒷바라지 하느라고 수고가 많으셨겠다』고 걱정했고 필성씨도 매제인 임세진씨와 첫 대면이지만 『장모를 모시고 있는 것으로 보아 참 좋은 사람같다』고 말했다.
필성씨부인 홍애자씨는 서울에서 남편친구들이 마련해줬다는 꽃다발을 시누이 필화씨에게 전달.
이 꽃다발은 남편과 함께 월남한 고향친구 조윤식(58ㆍ메리야스 공장경영)ㆍ오명식(58ㆍ상점경영)씨가 마련해 준 것으로 이들도 필화씨를 만나기 위해 9일 도착할 예정.<삿포로=방원석특파원>
◎한필화씨는 누구인가/64년 동계올림픽서 “은메달”/남편은 김일성대 체육과 교수
40년만에 오빠를 만난 한필화씨(48)는 북한 동계체육위원회 부위원장에다 스케이팅협회 서기장(전무이사급)이란 중책을 맡고 있는 북한체육계의 비중있는 인물.
이번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에도 총감독으로 선수단을 인솔하고 출전,선수훈련 및 경기출전에 이르기까지 선수단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한씨는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동계올림픽(64년)에서 아시아인으로는 첫 은메달(3천m)을 획득해 세계를 놀라게 했었다.
지난 72년 삿포로 동계올림픽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한 한씨는 이후 코치와 임원직을 두루 거쳤으며 85년 체코,89년 불가리아 동계유니버시아드에는 단장으로 선수단을 이끌고 출전했었다. 김일성대학 체육과교수인 남편 임세진씨와 동행한 한씨는 오빠와의 상봉을 눈앞에 두고도 선수들과 함께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경기장을 오가는 등 선수단관리에도 충실,설레거나 들뜬 모습을 일체 드러내지 않는 침착한 일면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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