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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 자제 요청해 놓고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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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청와대가 국익을 도외시하고 앞뒤 가리지 않는 행동을 하고 있다. 본지가 7일 버웰 벨 한미연합사령관을 초청해 열었던 '21세기 동북아 미래포럼' 등으로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환수 문제가 다시 뜨거워지자 국방부가 엠바고를 전제로 언론에 설명했던 내용을 청와대는 이날 오후 전격 공개했다. 엠바고는 국익 또는 개인 사생활.수사 등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사안에 대해 언론에 보도 자제를 요청할 때 활용돼 왔다.

청와대 측의 공개 내용은 세 가지였다. 첫째는 한국이 전작권 환수 뒤 한국군과 미군 간의 작전을 원활하게 수행키 위해 미군이 한국군의 작전사령부급 부대에 작전협조반을 파견하는 것이다. 둘째는 한미연합사를 대체할 협조본부의 세부 기능, 셋째는 전작권 환수에 따른 안보 공백을 줄이기 위해 미국의 지원을 약속하는 약정(TOR)에 명시될 4개 항의 원칙 등이다.

하지만 국방부와 합참은 "한.미 간에 협의 중인 내용이어서 일반에 공개되면 국익에 해가 된다"며 10월 말 한.미 연례안보회의(SCM) 때까지 보도를 자제해 달라고 언론에 요청했다. 엠바고 내용은 청와대에도 전달됐다.

그런데 청와대 안보정책수석실은 이런 엠바고 내용을 '전작권 환수는 동맹의 질적 발전 과정이다' '한국이 주도하고 미국이 지원하는 공동 방위체제'라는 두 개의 글에 실어 청와대 브리핑에다 공개했다. 청와대 측은 이 과정에서 해당 부처인 국방부와 의논하지도 않았다. 엠바고를 지켜준 언론은 물론 협상 상대국인 미국에도 양해를 구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이 글의 작성자는 청와대 안보정책수석실과 국방부로 돼있다. 청와대는 국방부와 사전 협의를 하지 않아 국방부 명의를 도용한 셈이 됐다. 이런 내용이 인터넷에 공개된 뒤 언론과 국방부가 항의하자 청와대는 뒤늦게 문제 된 내용과 혼선을 일으키는 용어를 삭제하는 등 한바탕 소동을 벌였다.

청와대는 전작권을 환수해도 안보 문제가 없음을 과시하기 위해 이런 내용을 서둘러 공개한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이 국익에 위배되는지, 미국과의 협상에 지장은 없는지 등을 국방부와 먼저 논의해야 하는 게 상식 아닐까. 청와대 측의 독단적 행동이 정부 정책의 혼선을 초래하고 국익을 해칠 수 있다는 점을 한번쯤 생각해 보기 바란다.

김민석 군사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