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굴 틀림없다” “수고했다”/긴박한 3일 오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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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탐사 성공하자 관계자들 환호성/흙먼지 날려 무전 끊겨 한때 긴장
『여기는 코뿔소. 통제부 나와라.』
『여기는 통제부. 말하라.』
『적들이 파놓은 땅굴이 틀림없습니다.』
『근거를 대라.』
『갱차 레일 침목이 북쪽으로 연결되어 있고 북쪽에서 남쪽으로 천공한 흔적이 벽에 있습니다. 또 BA30 배터리 크기(길이 3cmㆍ지름 2cm 가량)만한 애자도 발견했습니다. 또….』
『됐다. 수고했다. 지뢰와 부비트랩을 조심하고 매 10m 전진시 보고하라,이상.』
3일 오후 1시28분 강원도 양구군 동부전선 비무장지대안 제4땅굴 탐사작전 통제부에 울려퍼진 무전기 교신―.
지난해 8월14일 시추공 수위측정 도중 모터 작동소리를 듣고 본격탐사에 착수한 지 7개월여 만에 땅굴탐사작전인 「소양호 작전계획」이 성공하는 순간이었다.
교신후 관할지역 사단장인 이준소장과 탐사현장 통제단장 이영익준장은 굳은 악수를 나누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고 이를 지켜보던 군관계자들은 환호성을 올렸다.
군당국이 71년부터 지금까지 이 지역에서 청취한 땅굴공사 관련 소음은 폭파음 2천64회,장비충격 타격음 4백19회,엔진음 3백52회.
이에따라 79년부터 지금까지 1회 시공비가 1천만원 가량 드는 시추탐사를 실시한 횟수만도 2백79차례.
이중 지난해 12월24일 오전 1시24분 시추공을 낙하하던중 지하 1백45m 지점에서 모터소리를 듣고 지하동굴을 확인한 뒤 역갱도 굴착작업을 실시,70일 만에 북측의 남침용 땅굴을 확인한 것이다.
『여기는 통제부. 코뿔소 나와라. 코뿔소 코뿔소….』
땅굴을 확인해준 땅굴탐사팀 소탕중대장 김두환대위의 암호명인 「코뿔소」가 5분여 동안 보고가 없자 실무책임자인 박준장은 중대장을 목메게 찾았으나 연락이 두절됐다.
마침 땅굴굴착기(TBM) 앞에 설치된 카메라도 땅굴 붕괴때 발생한 먼지에 뒤덮여 통제부에 위치한 CC-TV마저 무용지물―.
일순 통제부 지휘소에 있던 군관계자및 보도진은 긴장속에 휩싸였다.
통신대대장이 무전장비를 휴대하고 땅굴에 투입할 준비를 하고 또다른 소탕중대팀이 출동준비를 서두를 즈음 무전이 재개됐다.
『붕괴지점부터 15m 지점 좌측벽에 검은색 글씨로 「조국을 통일하자」라는 글씨가 보입니다. 10분에 약 10m 정도 전진이 가능합니다,이상.』
『조심하고….』
1백m 이상의 지하땅굴에서 북한측이 판 것을 입증하는 증거물들이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지상으로 옮겨져 속속 통제부에 도착했다.
길이 98㎝,지름 10㎝ 가량의 심하게 부패된 침목,길이 20㎝의 폭약용 전선줄,가로 20㎝ㆍ세로 10㎝ 크기의 공구용인 듯한 철제가방 등.
『군단장님 방금 아측 OP에서 들어온 보고입니다. 북측이 2시30분에 대접방송을 했는데 제4땅굴은 우리가 판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통제본부에 나와있던 관할지역 군단장에게 북측의 심상찮은 움직임에 대한 보고가 접수되자 축제분위기에 휩싸였던 통제부는 또다시 긴장속에 빠졌다.
통제단장 박준장은 연신 줄담배를 피우고 물을 마셔댔지만 입술이 마르기 시작했고 땅굴내 투입된 소탕중대장은 작업이 곤란할 정도로 수시로 무전에 매달려야 했다.
중대장ㆍ군견병ㆍ탐색병 2명ㆍ소대장ㆍ통신지원중계병 2명ㆍ후방경계및 지원조 4명의 순서로 늘어선 11명의 소양호 작전계획 소탕중대는 영상 20도의 고온에서 무거운 장비를 짊어지고 긴장속의 작업을 이날밤 늦게까지 성공적으로 마친 뒤 무사하게 지상으로 올라왔다.
이들 11명 병사들의 온몸은 땀과 진흙으로 뒤범벅이 되었지만 얼굴은 작전 성공에 따른 희열로 가득했다.〈동부전선=김우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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