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KGB요원 10년간 보호후 공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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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각국 메시지 감청전문가 44세 셰이모프소령/망명 누레예프 테러계획등 폭로
소련국가안보위원회(KGB)의 모든 암호체계와 해외스파이 활동내용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KGB통신전문가가 10년전 미국에 망명,미중앙정보국(CIA) 보호속에 살아온 얘기가 2일 공개됐다. 통신정보를 다루는 기능때문에 KGB안에서도 장막속에 가려진 제8국에 근무했던 빅토르 이바노비치 셰이모프소령이 그 장본인이다.
올해 44세인 셰이모프는 모스크바국립공대의 미사일 및 항공기전공의 「스쿨M」을 졸업했다. 25세때인 71년 KGB로 「초대」돼 처음에는 8국에서 도청 및 암호를 다루다가 74년에는 KGB의 모든 해외첩보공작을 관장하는 제1국에 배속됐다. 그곳에서 통신감시관으로서 세계각처로부터 수신되는 메시지를 감청했다.
정치국에 올라가는 일일정보보고서 작성도 그의 임무였다. 자연히 해외기밀 공작내용을 완전 파악할 수 있었다.
당시 서방에 망명한 저명한 무용가 루돌프 누레예프가 말썽이었다. 61년 망명이래 크렘린 당국에 대한 비판발언을 끈질기게 계속했다. 그러자 KGB는 누레예프의 발을 부러뜨리는 문제를 놓고 해외조직과 전문을 주고받기도했다. 64년 미국에 망명한 KGB첩자 유리노셍코를 암살하는 방안도 논의했다. 노셍코의 승용차 좌석에 독바늘을 떨어뜨려놓는 묘안도 제기됐다.
당시 KGB책임자였던 안드로포프가 브레즈네프 서기장의 뒤를 이을 실력자로 권력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셰이모프는 미국망명을 결심했다.
79년 폴란드를 여행,바르샤바에서 솔로프예프라는 KGB지역책임자를 만났을때 그 결심을 확고히 하게됐다. 솔로프예프는 안드로포프가 직접 서명한 긴급전문을 셰이모프에게 보여주었다.
교황 바오로에게 접근할 수 있는 정보를 입수하라는 것이었다. 셰이모프는 KGB가 교황암살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했다. 솔로프예프도 『만약 그렇게 한다면 폴란드 사람들은 전부 죽여야하는 사태가 오든지 아니면 우리가 폴란드에서 철수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셰이모프는 주장하고 있다. 안드로포프는 바오로교황 선출직후 『사회주의 국가의 시민이 어떻게 교황이 될 수 있느냐』며 개탄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와관련,워싱턴의 내셔널 프레스클럽에서 『정말 모스크바가 교황암살을 계획했다는 직접적 증거가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없다』고 답변했다.
셰이모프는 80년 처자를 데리고 모스크바의 아파트를 탈출,미CIA의 도움을 받아 미국으로 망명했다.
현재 자신의 직업을 「고문」이라고 소개한 셰이모프는 빅토르 오를로프라는 필명으로 그동안 여러 신문에 소련첩보 활동에 관한 글을 기고하기도 했다. <워싱턴=한남규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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