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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배명복칼럼

9·11 테러 5주년의 교훈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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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나흘 후면 9.11 테러 5주년이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2792명의 목숨을 앗아간 알카에다의 묵시록적 테러를 '미국에 대한 공격'으로 규정하고 전 지구적 전쟁을 선포했다. '테러와의 전쟁'이다. 분노한 독수리는 발톱을 세웠다.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으로, 이라크로 날아갔다.

5년이 지난 지금,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이 서 있던 그라운드 제로는 평온을 되찾았다. 그러나 질문은 꼬리를 문다. 과연 세상은 더 안전해졌는가. 테러는 줄어들었는가. 적이 누구인지조차 불분명한 이 전쟁에 끝은 보이는가. 현실은 어느 질문에도 "예"라고 대답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바그다드에서 런던, 마드리드에서 발리까지 테러의 검은 그림자가 사람들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다. 지구촌 동시대인은 불안하고 착잡한 심정으로 9.11 5주년을 맞고 있다.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전 세계에서 7만2265명이 '테러와의 전쟁'으로 목숨을 잃었다. 국제 민간단체인 '이라크 보디 카운트(IBC)'는 그중 4만1639~4만6307명이 이라크 민간인이라고 집계하고 있다. 지금까지 이라크에서 숨진 미군만 2658명이다. 9.11 테러의 희생자와 맞먹는 숫자다. 테러와의 전쟁 속에 더 많은 사람이 테러로 죽어가는 이 역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중동 민주화의 모범이 될 거라던 이라크는 점점 끔찍한 수렁으로 변해가고 있다. 미국이 쏟아부은 3200억 달러의 전비(戰費)에도 불구하고 증오뿐인 종파분쟁으로 내전의 상처는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미국은 진퇴양난의 딜레마에 빠졌다. 제압된 줄 알았던 탈레반이 다시 활개를 치면서 아프가니스탄은 또다시 테러와 혼란의 진원지가 되고 있다. 오사마 빈라덴의 행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늪에 빠진 미국을 비웃기라도 하듯 이란의 핵 시계는 지금도 쉬지 않고 돌아가고 있다.

무엇이 잘못됐는가. 어떻게 그것을 바로잡을 수 있는가. 9.11의 악몽이 5년 전의 일이 된 지금, 미국은 원점에서부터 다시 고민해야 한다. 부시 대통령은 얼마 전 '이슬람 파시즘'이란 말을 썼다. 부정확한 정치적 수사(修辭)로 이슬람에 대한 증오를 부추기고, 억압을 정당화하는 태도로는 결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슬람=파시즘'이라는 왜곡된 인식은 극단주의에 대응하는 또 다른 극단주의일 뿐이다.

미국은 민주주의 확산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야 한다. 민주주의와 자유의 확산을 통해 테러를 막는다는 이상은 옳다. 하지만 정책은 현실에 바탕을 두고 있어야 한다. 민주주의란 올리브 나무는 강제로 이식한다고 자라는 게 아니다. 메마른 땅에 심은 나무는 곧 시들고 만다. 물을 뿌리고 거름을 줘 민주주의가 뿌리 내릴 수 있는 토양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

힘으로 밀어붙인다고 될 일이 아니다. 시간과 인내가 필요한 일이고, 선의와 진심을 보여야 가능한 일이다. 약자가 내미는 손은 비겁함이지만 강자가 내미는 손은 아량이고 용기다. 유일 초강대국의 지위를 영원히 누릴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착각이다. 혼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오만이다. 공존과 상생은 시대가 요구하는 미덕이다.

미국이 이라크에서 발을 뺀다고 무책임을 비난하고, 패배라고 비웃을 사람은 없다. 필요할 때 물러설 줄 아는 것이 진정한 용기다. 베트남의 선례도 있다. 이란과의 진지한 직접 대화를 통해 핵 문제에 접근한다고 해서 미국을 조롱할 사람도 없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다. 잘못된 줄 알면서도 약점을 보이기 싫어 그냥 간다면 그것이야말로 비겁함이다. 아량은 강자의 특권이다.

미국은 오만의 외투를 벗어 던지고 선의의 손을 내밀라. 그래서 세상을 혼돈에서 구하라. 그것이 21세기 미국의 '명백한 운명'이고, 그라운드 제로를 떠돌고 있는 억울한 원혼들을 달래는 길이다.

배명복 논설위원 겸 순회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