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안보 미 역할 축소 천명/체니 국방 한ㆍ비ㆍ일 순방 결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미군철수ㆍ방위비 분담 구체적 조정 의사/일부만 감군… 영향력 지속시킬 속셈도
지난 10일 워싱턴을 떠나 한국ㆍ필리핀ㆍ일본을 거쳐 24일 귀국하는 로버트 체니 국방장관의 아주순방 내용을 가리켜 미국 국방부는 「동아시아 안보구상(이니셔티브)」이라고 명명하고 있다. 실제로 그의 이번 방문은 「태평양지역국가」 미국이 앞으로 이 지역에서 새모습으로 조명되고자하는 의사를 천명하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것으로 풀이된다.
체니장관이 3개국 수도를 차례로 방문하면서 일관성있게 표명한 미국의 의사는 미국역할의 축소조정이었다. 그는 이번 순방을 결산하는 의미로 19일 동경외신기자클럽에서 연설하면서 첫째,미국은 앞으로 3년에 걸쳐 아시아 주둔미군중 10%(1만2천명)를 철수할것을 희망하고 있으며 둘째,계속 남게되는 미군에 대한 아시아 각국의 지원증가를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미 서울에서 한국 지휘관이 양국 군사동맹관계에서 주도적 위치를 맡도록 작전권 이양문제를 검토하기로 합의하고,마닐라에서는 만약 기지 사용료 협상이 여의치 않으면 클라크ㆍ수비크미군기지의 이전도 가능하다고 밝히는 한편,동경에서는 다른 방문지에서와 달리 미군철수 규모 5천여명을 언명했다.
그러나 그는 미 역할축소 의사에 대한 당사국의 우려를 감안,아시아 감군을 「병력조정」이라고 표현하고 이같은 조치가 「장차 철군을 향한 첫단계 행동」으로 받아들여지면 안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조정」이 과연 이 정도에서 그칠지는 지켜보아야 할 일이다. 동구 자유화와 유럽 긴장완화 이후 부시 행정부가 받고있는 해외주둔 병력 삭감압력은 미의회에만 국한된게 아니다. 아시아 주둔 미군병력 감축압력은 모스크바쪽도 만만치않다.
미 의회는 특히 주한미군을 1만명으로 줄이라고 하는등 대폭 삭감을 거론하고 있고 태평양 지역으로부터 항공모함등 상당 규모의 해군력 축소를 희망하고 있다.
한편 소련은 이미 불라디보스토크의 태평양 함대를 축소하는등 해군작전을 감축하고 1개월전에는 베트남 캄란만으로부터 전투기의 일방철수를 발표하는가 하면 금년내 소련의 동아시아 국경지대로부터 10만명의 병력을 철수시킬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소련은 해군력을 위시한 태평양지역의 미 우세를 겨냥,대미 감군공세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금년내 미소간의 유럽감군 협상이 끝나면 앞으로 군축협상의 초점은 태평양으로 이동할 것이 분명하다. 체니장관도 동경연설에서 『이 지역의 안정이 위협받지 않는다는 확고한 징후가 있을때 미국은 또다른 조정을 할수도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의회와 소련이 겨냥하는 태평양지역으로부터의 대폭적 감축에 대해 체니장관은 냉담하다. 그가 아시아 순방에서 미 역할축소를 예고하면서도 동시에 줄기차게 역설한 주제는 『미국은 아시아에 계속 남는다』는 것이었다.
미역할은 축소시키더라도 미국의 영향력은 축소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체니장관은 이와관련,동경 연설에서 공산주의 저지외에 미 아시아 주둔의 새로운 이론적 근거를 다섯가지로 요약했다. 첫째,북한 위협 둘째,북한ㆍ중국ㆍ베트남ㆍ캄보디아ㆍ미얀마르 등 내부 변화과정의 불안정 셋째,중국ㆍ인도의 「지역세력」 등장 우려 넷째,미군철수로 야기될 영토분쟁 다섯째,탄도미사일 및 핵무기 기술확산 등이다.
다시말해 미국은 아시아에서 역할축소에도 불구하고 영향력을 지속시킬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주요 정책전환기에 처하여 고민하고 있음을 체니장관의 이번 순방에서 드러낸 것이다.
서울에서는 우선 5천명 정도의 주한미군을 3년에 걸쳐 철수하는데 원칙적인 합의가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측으로서는 미 의회의 대폭적 미군철수 주장을 원칙적으로 저지하는 것이 능력밖의 일일뿐 아니라 미군을 현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미측의 주둔 경비지원 요구액을 감당할 능력도 없어 어쩔수 없이 감군에 합의한 것으로 미 군사소식통들은 풀이하고 있다.
체니장관은 아시아주둔 미군 병력의 삭감문제는 군관계자들과 의회와의 협의를 통해 최종적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워싱턴=한남규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