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세 세입자부터 도와야/정부의 집세대책 실현성 앞세우라(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전ㆍ월세 상승문제로 온 나라안이 물끓듯 하고 있다. 정부는 전ㆍ월세,임대료등록제와 인상률 고시제를 골자로 하는 특별법을 마련한다는 대책을 내놓고 있으나 법률안이 나오기도 전에 벌써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서울의 주택보급률이 60% 미만에 머무르고 있고 전국에 남의 집에 세들어 사는 사람이 5백50만가구에 달하는 우리 현실에서 전ㆍ월세가 한꺼번에 50% 혹은 1백%씩 오른다는 것은 이해 당사자의 개별적인 문제를 떠나 사회의 안정기반을 뒤흔드는 중대사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런 만큼 이 문제는 정부에만 해결책을 맡겨놓고 방관할 일이 아니라 온 국민이 함께 지혜를 모아 대책을 마련,하루바삐 사태를 수습해야 하리라 생각된다.
우리가 보기에 이번 전ㆍ월세 파동의 근원은 물론 주택의 물량공급부족에 있지만 하필 현시점에서 지금과 같은 급격한 형태로 파동이 확산되고 있는 것은 정부의 재산세 과표현실화 등 일련의 부동산정책이 현실적 여건과 부작용들을 고려하지 않은 채 성급하게 한번에 모든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식으로 추진된 결과로 빚어진 것이다.
재산세가 한꺼번에 수십%,수백%씩 오르게 된다면 당연히 그 집에 세들어 사는 사람에게도 그 부담이 전가되리라는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일인데,이에 대한 대책마련없이 재산세 과표현실화 정책부터 밀어붙인 데서 지금과 같은 부작용이 나오게 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전ㆍ월세입주자를 위한다는 임대차보호법의 임대기간 연장이 세들어 사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집세부담증가의 고통을 안겨주고,파동을 가속화시킨 것도 전후좌우를 살피지 않고 이상론에 치우쳐 제도를 손질한 데서 비롯되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우리는 기회있을 때마다 정부의 부동산제도 개혁에 대해 신중한 자세를 취해줄 것을 촉구해왔지만 이 자리에서 다시 강조하고 싶은 것은 현실에 바탕을 두지 않은 제도개혁은 반드시 더 큰 부작용을 부르고 자칫 제도개혁 그 자체마저 어렵게 만든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는 점이다.
성급한 제도개혁이 새로운 부작용을 낳고,그 부작용이 또 다른 제도마련을 강요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는 과정에서 혼란이 가중된다면 어려운 경제상황에서 하루빨리 안정을 찾고 온 국민의 역량을 결집해야 할 우리 여건에서 더 이상 안타까운 일이 없을 것이다.
차제에 또 한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부동산대책뿐 아니라 정부의 행정이 유도행정보다는 규제일변도로 기울고,그것도 국민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형태의 정책수단을 동원하는 일이 너무 많다는 점이다. 조세정책에 의존하는 부동산정책은 말할 것도 없고 교통문제ㆍ통신문제,심지어 물가대책까지도 조세나 벌과금에 의한 규제를 능사로 삼고 있는데 그 효과는 둘째치고 거기서 파생될 부작용이 없겠는가를 깊이 검토해볼 일이다.
이번 전ㆍ월세파동에 대한 정부의 대책은 그 실효성에 대한 논란이 없지 않으나 물량부족 등 근원에 대한 대책이 시간이 걸리는 일인 만큼 현실에 맞게 내용을 보완하여 추진해볼 만한 일이라 생각된다. 다만 5백50만가구에 달하는 세입자들의 문제를 한정된 행정력으로 규제하는 데는 현실적으로 문제가 있는 만큼 우선 시급한 영세입주자들의 문제에 행정력을 집중,실효성을 얻도록 하는 데서 문제를 풀어나가야 된다고 본다.
또 당장 인상된 전ㆍ월세금 부담을 해결하기 어려운 계층을 위해 금융기관이 신용담보 등으로 특별 대출해주는 방안을 마련하는 문제도 검토해볼 만하다.
그러나 거듭 강조하거니와 하나의 대책이 다른 부작용을 불러 거기에 대한 대책을 다시 마련해야 하는 악순환은 미리 막아야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