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파병 결정 임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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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이라크 주둔 외국군을 유엔 승인 아래 다국적군으로 전환하는 내용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안이 통과하면서 이라크에 추가 파병하는 결정이 임박한 분위기다. 청와대는 17일 숨가쁘게 돌아갔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하루종일 대책회의를 열었고, 노무현(盧武鉉)대통령도 본격적인 파병 여론 수렴에 나섰다.

盧대통령은 재향군인회 임원단과 청와대에서 오찬을 함께 한 데 이어 서경석 경실련 상임집행위원장·정현백 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 등 시민사회단체·종교계 인사들과 간담회도 했다. 파병 반대 입장을 밝혀온 시민단체 관계자들과의 면담 일정은 盧대통령의 지시로 전날 갑자기 잡혔다.

청와대 관계자는 “파병에 대한 국내 찬반 의견은 이미 다 드러나 있지 않느냐. 이제는 대통령의 정치적 결단만 남은 상태”라고 말했다. 盧대통령이 파병 결정에 앞서 의견을 수렴하는 형식을 거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발언이다.

그런 만큼 파병 결정은 18일 열리는 대통령 주재 NSC에서 공식적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20일 한·미 정상회담 직후 파병을 결정하면 미국의 압력에 따른 것이라는 오해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재신임 국민투표를 결정한 대통령에게 부담이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17일 방일 때 일본 정부가 연내 이라크 파병 방침을 전하는 것도 우리 정부의 파병 결정을 앞당기는 요인이 됐다는 분석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지금 하나 한달 후에 하나 국내 상황은 마찬가지일 텐데 출국 전에 파병 결정을 발표할 경우 ‘어차피 도와줄 것 화끈하게 도와줬다’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조기 파병 결정은 유엔 안보리 결의가 결정적 계기가 됐다. 미국 단독주의에 대한 지원이 아니라 유엔 주도의 다국적군에 병력을 보내는 것인 만큼 파병에 반대해 온 진보 세력을 설득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겼기 때문이다. 더구나 결의는 만장일치였다. 지난번 공병·의료부대 파병 때 ‘명분이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할 만큼 명분을 중시해 온 盧대통령으로선 운신의 폭이 커졌다는 풀이다.

국민도 유엔 다국적군 일원으로 파병할 경우 70%대가 찬성하고 있다. 따라서 조기 파병 결정 이면에는 재신임 정국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정치적 판단도 깔려 있는 듯하다.

한·미동맹과 북핵 문제도 저울질한 결과로 보인다. 파병하지 않을 경우 한·미동맹은 큰 상처를 입게 되고, 북핵 공조도 쉽지 않을 것이란 판단이다. 이라크 정세가 비교적 안정돼 있는 점이나 파병이 가져올 경제적 효과, 원유의 안정적 공급 기여, 국위 선양 등도 고려했다는 후문이다.

오영환.김성탁 기자 <hwasan@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cogit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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