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동서의 소 영향력 강화 겨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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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셰바르드나제 외무 한반도 장벽제거 발언의 의미/한국정부의 시각/북한과 사전협의 가능성 경계/“콘크리트장벽 없다”… 적극 외교계획
소련의 셰바르드나제외무장관이 11일 미소 외무장관 회담을 끝내고 가진 기자회견에서 『한반도의 장벽제거를 위한 국제적인 노력을 촉구』한 데 대해 외무부와 통일원은 일단 조심스런 태도를 보이고 있다.
셰바르드나제가 언급한 「한반도의 장벽」이 김일성이 신년사에서 제의한 비무장지대 남측의 「콘크리트장벽」을 의미하는 것인지,상징적 의미의 분단상태를 뜻하는 것인지 분명치 않기 때문이다.
APㆍ로이터 등 서방통신은 「한반도장벽」이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소련관영 타스통신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북한)이 제안한 한반도를 분단하고 있는 콘크리트장벽의 철거문제에 대해 (남측이) 적절한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말해 서로 다른 보도태도를 보이고 있다.
정부는 처음에는 소련 고위관리가 한반도 긴장완화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자세를 보인 것은 남북한 관계개선 측면에서 환영할 만한 발언이라는 태도였다.
그러나 타스통신의 보도내용이 전해지면서 타스통신이 정확하다면 이는 김일성의 입장을 대변한 것으로 유감스런 것이라고 태도를 바꾸었다.
즉 셰바르드나제가 「콘크리트장벽」 철거와 남북한 자유왕래를 지지했다면 이는 북한과의 사전협의를 거쳐 나온 발언이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번 미소 외무장관회담에서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남북한간 직접대화를 지지한 것은 우리측이 미소 외무장관회담 직전에 미국에 거론을 요청한 것으로 볼 수 있어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또 소련은 외부적으로 북한의 입장을 지지해 주면서 김일성이 신년사에서 대남 선전용으로 제시한 콘크리트장벽 철거문제를 기정사실화시켜 한반도문제를 국제적으로 풀어보자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소련은 북한을 달래가면서 개방을 유도하는 2중적 접근태도를 보이는 것이라는 분석이다.
소련언론들이 최근 한소 영사처리 개설사실을 점진적 외교관계 수립으로 나아가는 신호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문익환목사와 임수경양 등 방북인사들에게 중형을 내린 데 대해 비난하는 2중적 자세를 보이고 있는 것도 소련 정부의 태도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정부는 이에 따라 최근 개설된 주소 한국영사처와 소련의 서울영사처를 통해 휴전선에 콘크리트장벽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해시키는 외교적 노력을 기울일 계획이다.<김두우기자>
◎소 외무발언 나오기까지/미­중­일과 함께 「연고권」 주장/4월 김일성의 방소앞서 개방유도
10일 끝난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장관과 베이커 미 국무장관 사이의 미소 외무장관회담 공동성명에서 한반도의 긴장완화 문제가 정식거론되고 외무장관회담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셰바르드나제외무장관이 한반도를 남북으로 가르고 있는 「벽」의 제거와 남북한간 자유왕래를 촉구하고 나선 것은 매우 주목되는 사실이다.
피상적으로 볼때 셰바르드나제의 발언은 지난번 김일성 신년사에 언급됐던 비무장지대에 설치한 남한측의 콘크리트장벽 철폐요구,그리고 북한을 불법방문했던 문익환목사와 임수경양에 대한 법적 처벌에 대한 항의와 그 내용을 같이 하는 것으로 보인다.
셰바르드나제의 이번 발언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이미 동유럽에서 엄청난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소련의 외교적 관심이 서서히 아시아지역으로 돌려지고 있는 것으로 봐야한다고 일본언론들은 보고 있다.
그동안 소련외교에 있어 아시아지역은 그 중요성에 있어 유럽 다음의 부차적인 곳이었다. 사실 유럽의 경우엔 미ㆍ소 양국이 요리해 왔으나 아시아에서 소련이 차지하는 영향력은 미ㆍ중ㆍ일과 함께 4자중 하나에 불과했으며 그나마도 그동안 미­중­일등 3국의 사실상 동맹체제하에서 소련의 영향력은 극히 미미했다.
고르바초프는 86년 7월 극동 블라디보스토크선언,88년 9월 시베리아 크라스노야르스크선언을 통해 소련은 유럽국가인 동시에 아시아국가임을 선언하고 앞으로 소련이 이 지역에 있어 「정당한」 발언권을 행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같은 소련의 입장전환은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소련 시베리아­극동지역 개발에 대한 강한 의지,그리고 이를 위해 필수적인 아시아국가들의 자본및 기술참여에 대한 문호를 개방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시베리아­극동개발은 당초 기대와는 달리 일본과는 이른바 북방 영토문제로 장애에 부닥쳐 있다. 따라서 소련은 일본 대신 「아시아 제2의 경제대국」인 한국을 참여시키기 위해 그동안 여러가지 우호조치를 시도해 보았으나 한반도의 가장 중요한 문제인 남북대립이 장애가 됨으로써 결정적인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소련으로서는 유럽에서 이룩한 외교적 성과를 이제 아시아지역으로 확산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일본과의 북방 영토문제는 내년 봄으로 예정된 고르바초프의 일본방문으로 극적 전환을 맞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으며,그 뒤를 이어 한반도문제에서도 또다른 극적 전환을 이루려는 것이 이번 셰바르드나제의 발언이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그러나 문제는 북한이 동유럽국가들처럼 소련이 자신의 의사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입장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이번 발언이 오는 4월로 예정된 김일성의 소련방문을 겨냥,북한에 대한 일종의 개방요구 압력이 아닌가 라고 보는 시각도 없지않다.<동경=방인철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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