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헷갈리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노무현 대통령이 재신임 논란에 대해 "정치적 타결"을 언급하자 정치권은 "혼란스럽다"는 반응이다.

특히 지난 10일 盧대통령의 첫 발언 직후 성급한 반응을 보였다가 이후 입장을 바꿔 여론의 비난을 산 각 당은 이번에는 신중한 반응을 나타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자민련 등 야 3당은 17일 "아직 대통령의 진의를 모르겠다"며 명확한 입장 표명을 유보했다. 통합신당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야 3당은 재신임 논란이 어떻게 정리되든 간에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등 대통령 측근 비리에 대해선 철저히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는 주장을 고수했다.

◆"대통령 측근 비리는 별개"=한나라당 최병렬 대표는 대통령과의 만남 자체에 조건을 걸었다. 崔대표는 "최도술씨를 비롯해 대통령 측근들의 비리를 먼저 명명백백하게 밝힌 뒤 그걸 가지고 정당 대표들과 만나 논의하는 게 순서"라며 "이 문제가 정리되지 않고 대통령과 정당 대표들이 만나 무슨 얘기를 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박진 대변인은 "대통령의 현란한 말 바꾸기에 국민은 혼란스럽다"며 "정치적 타결의 의미가 뭔지 모르겠다"고 발표했다.

朴대변인은 "재신임을 묻자는 것은 정권의 도덕성 상실과 국정 파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대통령이 제기한 문제"라며 "이제 와서 정치적 타결을 하자는 것은 대통령의 책임을 정치권 전반으로 전가하려는 게 아니냐"며 의구심을 나타냈다.

다만 홍사덕 총무는 "(정치적) 부담을 나누자는 뜻이건 지혜를 모으자는 뜻이건 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며 회동 자체에는 응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반면 盧대통령의 발언을 전해 들은 뒤에도 민주당 박상천 대표는 직접 이 문제에 대해 언급하기를 꺼렸다. 대신 대변인을 통해 당의 입장을 발표하게 했다.

유종필 대변인은 "청와대 회동을 정식으로 제의해 오면 참석할 것"이라며 "참석할 경우 우리 당의 당론인 재신임 국민투표 철회를 당당히 말하겠다"고 했다.

柳대변인은 "청와대 회동에서 대통령 측근 비리 진상 공개 등 근본적인 재발 방지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자민련 유운영 대변인은 "盧대통령이 국정 현안을 논의하기 위해 여야 대표와 만나는 데 대해선 반대하지 않는다"면서도 "아직 대통령의 진의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논평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말 아끼는 통합신당=통합신당 이평수 공보실장은 "우리는 기존 입장에 변화가 없다"며 "재신임 국민투표를 계기로 정치개혁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조속히 국민투표를 실시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다만 천정배 의원은 "정국이 불안해지고 소모적 정쟁이 일 수 있는 만큼 정치 지도자들이 만나 허심탄회하게 얘기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하지만 청와대 사정에 밝은 신당의 한 핵심 인사는 "盧대통령의 발언은 국민투표를 철회하겠다는 의사는 전혀 아닌 것으로 안다"며 "정치권이 재신임 발언에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주장하는 만큼 이 부분에 대해 각당 대표들과 진솔한 얘기를 하겠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박승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