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PPING] 초고속 인터넷 미로같은 약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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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3면

7년가량 A사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하던 회사원 채모(27.충북 청주시 수곡동)씨는 이달 초 A사와의 계약을 해지하려고 업체에 연락했다가 위약금 4만원을 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처음 계약 때 약정한 기간(3년)을 넘겼는데도 '약관 규정에 따라 자동으로 2007년 3월까지 계약이 연장된 것이니 위약금을 내야 한다'고 설명했다.

대한주부클럽연합회가 KT.하나로텔레콤.LG파워콤 등 주요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 업체의 약관을 분석한 결과 소비자에게 불리한 조항이 적지 않았다. 주부클럽연합회 김순복 총무는 31일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에 접수된 초고속 인터넷 관련 소비자 불만을 분석한 결과 업체의 약관이 소비자 보호에 미흡한 부분이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올해 1~6월 소비자단체협의회에 접수된 초고속 인터넷 관련 불만은 6635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0% 증가했다.

◆까다로운 해지 조항=업체에서 광고하는 초고속 인터넷 속도와 실제 가입해 사용할 때의 속도가 달라 해지할 경우에도 업체들은 위약금을 요구한다. KT와 파워콤의 약관은 ▶서비스가 불가능한 지역으로의 이전 ▶고장 시간 누적 ▶군 입대 등의 경우에만 위약금을 내지 않고 해지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나로텔레콤은 '최저 속도 미달 시 고객의 청구에 의해 요금을 감면한다'는 규정이 있지만 '속도 약속 위반'에 대한 별도의 보상 조항은 없다. 김 총무는 "약속한 속도보다 느릴 경우 위약금 없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약관을 고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하나로텔레콤의 약관은 '계약 만료 30일 전까지 해약 신청이 없으면 계약이 자동 연장되는 것으로 본다'는 조항을 뒀다. 이 또한 '소비자의 의사를 확인하도록'으로 수정돼야 한다고 주부클럽은 주장했다. 이에 대해 KT.하나로텔레콤.LG파워콤 측은 "약관은 필요에 따라 변경되고 고쳐진다"며 "소비자들이 불만을 느끼는 부분에 대해선 문제점 등을 파악한 뒤 개선할 것"이라고 밝혔다.

◆약속한 사은품은 미적미적=회사원 김모(43.경기도 안양시)씨는 올해 3월 B사 초고속 인터넷에 가입하면 20만~30만원 상당의 디지털카메라를 선물로 준다는 말을 듣고 서비스를 신청했다. 하지만 3주 내에 주겠다던 카메라를 한 달이 넘도록 받지 못했다. 70일쯤 지나 '디지털카메라가 없으니 5만원권 상품권을 대신 받으라'는 말을 들었다.

김씨의 경우처럼 초고속 인터넷 가입 시 약속했던 상품을 주지 않거나 기존 업체와의 계약을 해지해 자사 서비스에 가입하면 위약금을 대신 내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례도 있었다. 상반기 소비자단체연합회에 접수된 6635건의 불만 가운데 사은품 지급과 관련한 불만은 669건, 위약금 대납 관련 불만은 582건이었다. 위약금 대납과 관련해 C사 관계자는 "위약금 대납은 현행법상 불법이지만 일부 대리점에서 실적을 올리기 위해 무리한 약속을 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고 해명했다.

염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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