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득의대한민국남편들아] 운동권 아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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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하러 안 갈 거야?"

그렇게 말하고 아내는 발딱 일어나 소매 없는 티셔츠와 짧은 반바지로 갈아 입고 모자를 찾아 쓴다. 나는 소파에 그대로 앉아 TV에 넋을 놓고 있다.

요즘 아내는 운동에 열심이다. 얼마 전에는 살을 빼야겠다고 말했다. 물론 아내가 그런 말을 한 게 처음은 아니다. 몸에 맞는 옷이 하나도 없다며 옷장 앞에서 한숨을 쉴 때도 그랬고 샤워를 하고 난 후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몸을 보며 짜증을 부릴 때도 그랬다. 하지만 그것은 그야말로 한숨이고 짜증이었다. 그저 혼잣말이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아이들과 나를 보며 "나 살을 빼야겠어!"라고 분명하고 단호한 어조로 선언한 것이다. 아내는 똑 부러지는 성격에 맺고 끊는 것이 분명해서 한번 한다면 반드시 해내는 사람이다.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안 하는 것도 아닌, 말만 앞서는 나 같은 사람과는 기질이 정반대다. 매일 퇴근 후 아내는 요가 비디오 테이프에 나오는 동작을 따라 했으며 한 시간 넘게 운동장을 걷거나 뛰다가 들어왔다. 그러기만 했으면 좋았을 텐데.

"정말 운동 안 나갈 거야?"

아내의 말을 귓등으로 흘리며 나는 TV 속으로 아예 기어 들어간다. 나는 운동을 싫어한다. 학교 다닐 때 운동회 날이 가까워오면 멀쩡하던 배가 아팠다. 체육시간에는 주로 스탠드에 앉아서 아이들이 쓸데없이 뛰어다니는 광경을 구경하곤 했다. 그렇다. 나는 게으르다. 원칙이라곤 도무지 없는 내게 만일 '삶의 원칙'이란 게 있다면 그것은 아마 움직임을 최소화해서 사는 일일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배가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 게다가 운동량이 거의 없으니 몸에 근육은 없고 지방만 가득하다. 나는 팔 다리는 가늘고 배만 볼록 나온 이른바 '거미형 비만'이다.

나는 운동이 무섭다. 그러나 사실 더 무서운 것은 함께 운동하자고 조르는 아내다. 아내는 왜 부부가 모든 것을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나는 모르겠다. 아내가 운동을 하는 동안 남편은 TV를 보면 왜 안 되는지. 어째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난 후의 나른한 행복감을 땀으로 끈적대는 피부와 가쁜 호흡과 근육통 같은 운동 후의 불쾌감과 바꾸려는 건지.

"같이 가자. 좀 같이 가면 안 돼?"

아내는 운동화를 신고 줄넘기를 꺼내 목에 건다. 현관에 서서 TV에 빠진 남편을 노려본다. 사실 내게 TV 내용이 들어올 리 만무하다. 나는 속으로 다짐한다. 못 간다. 숨이 가빠서, 천식이라서, 어제 술을 마셔서, 허리가 아파서. 절대 못 간다. 나는 TV 볼륨을 높인다.

"그러다 당신 먼저 죽으면 어떡할 거야?"

그만 나는 아내를 쳐다보고 만다. 고개를 돌리고 있다고 해서 세계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세계는 화난 아내와 한심한 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심한 남편은 TV를 끄고 화난 아내를 따라 나선다.

"그렇게 운동이 하기 싫어? 숨은 어떻게 쉬고 밥은 어떻게 먹어? 그렇게 매사가 귀찮은 사람이 어떻게 사랑은 하고 결혼은 했어?"

그새 기분이 풀어졌는지 아내는 말이 많아진다. 나는 속으로 말한다. 그러게. 내 말이 그 말이라니까.

김상득 듀오 광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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