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 대신 종이로 건물 지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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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하루가 다르게 콘크리트로 뒤덮이는 도시를 바라보면 두려워질 때가 있다. '저 많은 콘크리트 더미를 어떻게 모두 걷어낼까.' 일본 건축가 반 시게루(坂茂.49.게이오대 환경정보학부 교수)는 이미 1980년대에 그 대안으로 '종이 관(Paper Tube)'을 뼈대로 한 '종이 건축'을 선보여 '친환경 건축가'로 주목받았다.

둘둘 말린 청사진 꾸러미에서 착안한 '종이 관'은 값싸고 가벼운 데다 재활용할 수 있는 건축 재료다.

반 시게루가 설계해 다음달 15일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에 세워지는 '페이퍼테이너 뮤지엄(Papertainer Museum)'은 '종이 관'과 낡은 강철 컨테이너로 이뤄진 조립식 미술관이다. 현장을 찾은 그는 "한국 문화에서 대안을 찾은 새 시도"라고 말했다.

"나는 종이를 '진화된 나무'라고 부르는데 한국은 그 진화 과정 역사가 긴 나라입니다. 종묘에 늘어선 단아하고 아름다운 열주(列柱)를 보며 '종이 관' 형태를 다듬었지요. 초가집의 부드러운 지붕과 한국 산의 그윽한 능선이 미술관 전체 선을 통해 표현됩니다. 한국에 짓는 건물이니만큼 한국의 '지역성'을 살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디자인하우스(대표 이영혜)가 창사 30돌을 맞아 기획.설치 중인 '페이퍼테이너 뮤지엄'은 종이 기둥의 힘을 강조한 이동 미술관. 1000평 대지에 선 미술관에서는 연말까지 '여자를 밝히다' '브랜드를 밝히다'라는 특별전이 열린다.

"이 정도 규모의 미술관을 지으려면 150억 원쯤 들지만 '페이퍼테이너 뮤지엄'은 30억 원에 조명 공사까지 끝냅니다. 게다가 90% 이상 다시 쓸 수 있는 재생품이어서 환경 폐기물이 전혀 안 나오죠. 콘크리트를 안 쓰니 물은 한 방울도 안 들었고요."

반 시게루는 건축의 사회 참여를 중시한다. 1957년 도쿄에서 태어난 그는 미국 남캘리포니아 건축대학을 나와 85년 '반 시게루 건축 사무실'을 낸 뒤 'UN 난민위원회 고문'을 지내며 '르완다 난민 프로젝트' 등을 통해 임시주택을 연구해 왔다.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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