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외교대국 야망… 개도국에 무상원조 등 투자 대폭 늘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1면

일본 정부가 개발도상국을 겨냥한 외교를 대폭 강화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개도국과 빈국을 무상으로 지원하는 돈인 정부개발원조(ODA) 예산으로 내년에 올해보다 12.1% 늘어난 5305억 엔을 투입할 계획이다.

일본 외교 관련 예산의 약 70%를 차지하는 ODA 예산은 2001년 이후 올해까지 6년 연속 감소했다. 그러나 차기 정권이 본격적으로 활동하는 내년부터는 대폭적인 증액으로 방침을 바꾼 것이다. 일본 정부는 ODA 예산을 자원은 많지만 아직도 가난한 아프리카.중앙아시아.남미 국가들에 주로 쓴다는 복안이다.

재외공관도 내년에 10곳을 신설하기로 했다. 일 외무성은 이런 예산을 포함한 내년도 전체 예산을 올해보다 10.7% 증액한 7649억 엔으로 책정했다.

일본 외무성은 30일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내년도 예산안을 여당인 자민당에 보고하고 승인받았다. 이 예산안은 정부 내 이견 조율과 야당과의 협의를 거쳐 내년 초 확정된다.

◆ 돈으로 외교력 강화한다=일 언론들은 "다른 부처들의 예산 요구액 증가율이 5% 안팎인 점을 감안할 때 외무성의 10.7% 증액 안은 이례적"이라며 "차기 총리로 확실시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사진) 관방장관이 외교.안보 정책을 가장 중시한다는 점이 감안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날 자민당 외교관계 합동 부회에서 아소 다로(生太郞) 외상은 "일본에 바람직한 국제 외교환경을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선 그에 상응하는 자원을 투입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ODA 증액 문제는 아베 장관과 아소 외상이 중심이 돼 올 5월 총리 관저에 해외경제협력회의를 신설한 뒤 본격적으로 논의해 왔다.

일본은 외교력 확충을 위해 내년 중 ▶외무성 정원 312명 증원 ▶아프리카.중앙아시아 등에 재외공관 10곳 신설 ▶정보 보안 시스템 강화 등을 추진하기로 하고 여기에 256억 엔을 투입하기로 했다. 유엔한국협회 명예회장인 박수길 고려대 석좌교수는 "일본이 개도국 지원을 늘리고 공관을 증설하는 것은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비롯한 자국의 외교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방편"이라고 분석했다.

◆ 아프리카를 잡아라=아프리카에 대사관을 늘리기로 한 것은 지난해 일본이 안보리 진출을 시도했을 때 아프리카연합(AU)의 확고한 지지를 얻어내지 못한 것이 결정적 패인이었다는 반성에서 비롯됐다. 중앙아시아는 고유가 시대를 맞아 자원 확보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일부에서는 외무성의 이 같은 예산안이 작은 정부와 재정 지출 삭감을 지향하는 일본 정부의 개혁 방향과 배치된다는 점에서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9월 중순 총리 선거에서 아베 장관이 선출될 것이 확실하고, 8일에는 자민당 안에 '외교력 강화 특명위원회(위원장 모리 요시로 전 총리)'가 발족하는 등 외교력 강화 방침은 대세로 굳어지고 있다. 일 외무성은 앞으로 10년 안에 외교부 직원을 2000명 늘리고 대사관을 현재 117곳에서 150곳 이상으로 확충한다는 중장기 목표도 추진하고 있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