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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헌 회장 '최후 진술서'] "權씨, 3천만弗 받고 200억 또 요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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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고(故)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은 지난 8월 4일 투신 자살하기 9일 전 대검 중수부 조사실에서 권노갑씨 측에게 현대상선 자금 3천만달러를 포함해 약 5백60억원을 전달한 사실을 시인했다. 그러면서 돈 전달 과정과 권노갑씨를 알게 된 경위, 대북사업의 성격, 權씨에 대한 감정 등을 소상히 털어놓았다. 다음은 진술 요지.

◇권노갑씨를 만난 경위="대북사업 위해 인사갔다."

-1998년 1월, 현대그룹 회장 취임 후 김영완씨와 이익치씨가 권노갑씨에게 인사를 가자고 해 처음 權씨 집으로 갔다. 이후 權씨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 병문안을 간 적이 있고, 그러면서 알게 돼 몇 번 만났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 정주영 명예회장님 문제(대통령 출마)로 대북사업을 거의 진행시키지 못했다. 당시 김영삼 정부는 북한과 만나는 것 자체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대북사업이 다시 시작됐고, 權씨와 안면을 터놓아야 여러 모로 사업이 원활히 진행될 것 같아 인사를 갔던 것이다.

-당시 權씨를 소개한 것은 김영완씨다. 金씨가 權씨의 자금관리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두 사람이 무척 친한 사이로 보였다.

-그 후 여러 차례 만나면서 權씨와 사업적으로 주로 나눈 이야기는 대북사업 관련이었다. 權씨가 여러 가지로 정.관계에 지인이 많으므로 현대가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좀 도와 주십사하는 취지의 말도 건넸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북사업의 문제점="카지노.면세점 설치해야 적자 모면"

-대북사업의 가장 큰 문제는 하루 3억원씩 나고 있는 금강산 관광사업의 적자를 해소하는 것이었다. 그 방법은 금강산 입구 온정각과 유람선 내에 카지노와 면세점을 설치하는 방법뿐이었다. 금강산 유람선 사업을 시작했을 때 손익계산을 하며 전제로 삼은 것이 카지노와 면세점 설치였다. 정부에서도 그 부분에 대해 허가를 내줄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법률이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도록 돼 있다면서 관계 부처에서 허가를 내주지 않았고 그로 인해 적자를 냈다. 그런 부분에 대해 權씨에게 수차례 어려움을 호소했다. 카지노 등이 없이는 하루 3억원 가량의 적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고, 그러면 오래 버틸 수 없으니 정부에서 협조해 달라고 부탁했던 것이다. 權씨도 잘 되도록 도울 수 있는 것은 최대한 돕겠다는 취지로 말하곤 했다.

◇3천만달러 송금 경위="현대상선 김충식 사장을 시켜 해외계좌로 외화 보냈다"

-99년 12월 말인지 2000년 1월 초인지, 權씨가 보자고 김영완씨가 전해 신라호텔 라운지 커피숍에서 만난 적 있다. 나와 이익치씨가 먼저 기다리니까 權씨와 金씨가 와서 4명이 앉아 이야기했다. 그때 權씨가 나에게 "총선이 얼마 안남았는데 현대에서 좀 도와달라. 여당을 도와줘야 대북사업도 잘 되지 않겠느냐"는 취지로 말했다. 나는 "알았습니다. 제가 도울 수 있는 데까지 도와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고 헤어지게 됐다.

3~4일 후 이익치씨가 집무실로 와 "權씨 쪽에서 외화로 3천만달러를 달라고 한다"고 보고했다. 그래서 내가 줘야 하지 않겠느냐는 취지로 말했더니 다시 며칠 있다가 李씨가 해외의 계좌번호가 적힌 쪽지를 갖고 와서 하는 말이 "이쪽으로 보내 달란다"고 했다.

그래서 바로 김충식 현대상선 사장을 불러 계좌번호가 적힌 쪽지를 주면서 "총선과 대북사업에 필요한 자금이니까 어렵겠지만 보내줬으면 좋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 김충식씨가 "사업이 어렵지만 회장님이 말씀하시는 거니 해보겠다"라는 취지로 말하고 갔다. 그리고 며칠 후 송금이 완료됐다고 보고를 받았다.

-당시 權씨는 "대북사업에 어려움이 많지"라는 정도로 말하고, 나는 어려움이 많음을 호소하면서 도와달라고 했다. 이에 權씨가 도와주겠다는 취지로 말했다. 權씨는 또 총선과 관련해 현대에서 좀 도와 달라는 취지로 말했다.

◇2백억원 전달 과정="총선 자금 더 필요하다고 해 현금 2백억원 또 줬다"

-2000년 2월 말 신라호텔 1층 라운지 커피숍에 이익치씨와 함께 나가 權씨, 김영완씨를 만났다. 權씨는 "돈이 더 필요하다" "총선이 임박했으니 가능한 한 빨리 도와달라. 자세한 것은 金씨를 통해 진행하라"는 취지로 말하고 자리를 떴다. 金씨는 2백억원 정도를 현금으로 준비해달라고 했다. 현대상선이 어렵긴 했지만 대북사업과 관련된 일이라며 김충식씨를 설득해 돈을 준비해 金씨에게 보냈다. 權씨는 선거 후 전화로 도와줘 고맙다는 취지로 말했다. 그때 나는 현대의 대북사업을 잘 부탁드린다고 했고, 權씨는 할 수 있는 데까지 도와주겠다고 했다.

◇權씨에 대한 감정="실패했지만 그 일을 거론하지 않았다. "

-카지노 사업은 결국 허가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權씨에게 불만을 표시한 적은 없다. 權씨가 속으로 미안하게 생각했을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 그런 취지의 말을 한 적은 없다.

◇마지막으로 할 말은="모두 내 책임"

-별다르게 할 말은 없고 여러 가지로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정리=장정훈.문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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