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세희의 남자읽기] 내 아내가 왜 저렇게 됐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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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에게 교양미를 바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일까. 백화점 세일 때 아내와 외출한 K씨(50). 오늘도 영락없이 염치 없는 일을 쉽게 하는 아내 때문에 속이 상했다. 아내의 행동은 교통체증을 피하느라 탄 지하철에서부터 시작된다. 빈 자리를 보면 민첩하게 앉는 것은 물론 고맙게도(?) 남편인 자신마저 앉히려고 여간 애쓰지 않는다. 특별 할인행사에 사람이 몰린 곳이다 싶으면 옆사람을 슬쩍 밀치는 것도 예사다.

조심성 없기는 집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신과 아이들에 대한 불만이 있을 땐 고운 말 대신 큰 소리 치는 일이 다반사다. 간혹 아내에게 품위 있는 행동을 요구해 보지만 매번 "내가 원래 그랬던 여자냐, 당신하고 살다 보니 이렇게 됐다"는 대답만 되풀이해 들을 뿐이다. 곰곰 생각하면 학창시절 미팅 때 만났던 아내는 꽤 수줍음도 타고, 남의 눈치도 보던 여자였던 것 같다. 과연 내가 아내를 뻔뻔스럽게 만든 장본인인가? 때론 이런 자책감도 가져보지만 인정할 순 없다.

K씨 아내는 자신의 사소한 이익을 위해서라면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염치 없는 행동과 막무가내식 억지를 부리기도 하는 '아줌마'의 부정적 측면의 전형이다. 젊은 미혼 여성만큼이나 주변 사람을 의식하며 행동하는 서구의 아줌마와는 사뭇 다르다.

왜 유독 한국 여성들은 결혼해 세월이 지나면서 '아줌마'로 재탄생하는가. 인간의 삶은 남녀가 어울려 살면서 서로 지대한 영향을 주고 받는다. 또한 개인의 행동도 타고난 성격뿐 아니라 사회.문화적 환경.교육 등에 의해 좌우된다. 그렇다면 한국 아줌마의 몰염치한 행동은 우리 사회의 문화적 바탕과 아내를 대하는 남편의 태도에도 일부분 책임이 있지 않을까.

먼저 남편은 그간 가까운 내 사람이란 생각에 젖어 무심코 아내를 막 대하진 않았는지 자문해 봐야 한다.인격적인 대접을 못 받은 사람이 타인을 존중해 줄 가능성은 작다.

아내를 평생 남편에게 예속된 존재로 생각해 온 사회 인식에도 책임이 있다. 내 행동과 별반 상관없이 나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남편에 의해 결정될 때 스스로 품위 향상을 위해 노력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사실 교양미란 책읽기 등 꾸준한 마음공부를 통해 개발되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강조된 조강지처에 대한 관대함도 남의 눈치, 남편 눈치 안 보며 살 수 있는 방패막이를 제공한다. 이런들 저런들, 큰 잘못만 없다면 아내는 늘 남편이 믿고 살림을 맡겨야 하는 조강지처 안주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우선 오늘부터라도 남편인 당신이 아내를 존중하면서 품위 있게 대해 보자. 만일 내가 이런 노력을 기울이는 데도 아내의 행동에 변화가 없다면, 그래서 당신이 진정 괴롭다면 한번쯤 솔직하게 아내에게 이런 말을 해보면 어떨까. '당신이 교양없이 행동할수록 당신에 대한 내 사랑도 식어갈 수밖에 없다'고.

황세희 의학전문기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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