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50년이나 된 유럽 선수권전은 유럽뿐 아니라 전 세계 아마추어 바둑인이 모이는 축제다. 올해는 400여 명이 로마 근교에 모여 대회를 펼쳤는데 한국과 일본의 암중 주도권 다툼이 치열했다.
전 유럽은 물론 한국.일본.중국, 그리고 전쟁 중인 이스라엘 등에서도 바둑꾼들이 몰려 대성황을 이뤘다. 20~30년간 계속 참가한 사람은 흔했다. 전혀 바둑을 둘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던 이스라엘에 2만 명이 넘는 바둑 인구가 존재한다는 것도 놀랄 만한 일이었다. 2주일 동안 하루의 일상은 온통 바둑으로만 채워졌다. 프로들보다 더 진지하게 바둑에 몰두했다. 토너먼트가 끝나면 다양한 바둑 토론이 벌어졌고 각양각색의 바둑 세미나엔 사람들이 항상 북적거렸다.
바둑 종주국을 지향하는 한국과 일본의 암중 대결도 볼 만했다. 유러피언 콩그레스는 오픈 대회이기에 누구나 참가할 수 있다. 한국은 지난 수년간 아마 강자들이 여행 삼아 대회에 출전해 우승을 휩쓸었다. 프라하에서 열린 49회 대회 때는 상위 10명 중 7명이 한국인이었다. 이 같은 한국의 독주 분위기가 일본을 자극한 것일까.
이번 대회는 아예 일본 기업인이 주관했다. 다케미야 마사키 9단 등 프로기사 10여 명과 '고스트바둑왕'의 저자인 호타 유미 등 유명인사들이 대거 몰려들었다. 일본 선수단은 무려 100명에 육박했다. 또한 대학교 기숙사 등을 활용하던 기존 대회와 달리 이번 대회는 고급 호텔과 레스토랑에서 열리는 등 상업적인 페스티벌이 되면서 여행 경비가 평소보다 서너 배나 높아졌다. 그 바람에 동유럽 선수들과 명지대 바둑학과 학생들이 주축인 한국의 젊은 강자들은 거의 참가하지 못했고 한국 선수단도 23명에 그쳤다.
이 같은 일본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최강자를 가리는 메인 토너먼트는 결국 한국의 독무대가 됐다. 우승은 박치선 6단, 2위는 이기봉 7단. 3, 4위는 한국에서 프로가 된 스베타 쉭시나 초단과 알렉산드르 샤샤 초단이 차지했다. 스베타는 유럽인 중 가장 뛰어난 성적을 거두어 유럽 챔피언이 됐다.
월간바둑세계 최준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