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전통 유럽 선수권전 가 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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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벌써 50년이나 된 유럽 선수권전은 유럽뿐 아니라 전 세계 아마추어 바둑인이 모이는 축제다. 올해는 400여 명이 로마 근교에 모여 대회를 펼쳤는데 한국과 일본의 암중 주도권 다툼이 치열했다.

유럽에선 오래전부터 바둑대회가 축제처럼 열려왔다. 매년 여름에 열리는 유럽 바둑선수권전(European Go Congress)은 인종과 국경, 성별과 나이를 초월하는 전 세계 바둑 매니어들의 축제다. 유럽 바둑 반세기를 상징하는 50회 대회가 7월 30일부터 8월 12일까지 2주일간 이탈리아 로마 인근 프라스카티라는 소도시에서 열렸다.

전 유럽은 물론 한국.일본.중국, 그리고 전쟁 중인 이스라엘 등에서도 바둑꾼들이 몰려 대성황을 이뤘다. 20~30년간 계속 참가한 사람은 흔했다. 전혀 바둑을 둘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던 이스라엘에 2만 명이 넘는 바둑 인구가 존재한다는 것도 놀랄 만한 일이었다. 2주일 동안 하루의 일상은 온통 바둑으로만 채워졌다. 프로들보다 더 진지하게 바둑에 몰두했다. 토너먼트가 끝나면 다양한 바둑 토론이 벌어졌고 각양각색의 바둑 세미나엔 사람들이 항상 북적거렸다.

바둑 종주국을 지향하는 한국과 일본의 암중 대결도 볼 만했다. 유러피언 콩그레스는 오픈 대회이기에 누구나 참가할 수 있다. 한국은 지난 수년간 아마 강자들이 여행 삼아 대회에 출전해 우승을 휩쓸었다. 프라하에서 열린 49회 대회 때는 상위 10명 중 7명이 한국인이었다. 이 같은 한국의 독주 분위기가 일본을 자극한 것일까.

이번 대회는 아예 일본 기업인이 주관했다. 다케미야 마사키 9단 등 프로기사 10여 명과 '고스트바둑왕'의 저자인 호타 유미 등 유명인사들이 대거 몰려들었다. 일본 선수단은 무려 100명에 육박했다. 또한 대학교 기숙사 등을 활용하던 기존 대회와 달리 이번 대회는 고급 호텔과 레스토랑에서 열리는 등 상업적인 페스티벌이 되면서 여행 경비가 평소보다 서너 배나 높아졌다. 그 바람에 동유럽 선수들과 명지대 바둑학과 학생들이 주축인 한국의 젊은 강자들은 거의 참가하지 못했고 한국 선수단도 23명에 그쳤다.

이 같은 일본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최강자를 가리는 메인 토너먼트는 결국 한국의 독무대가 됐다. 우승은 박치선 6단, 2위는 이기봉 7단. 3, 4위는 한국에서 프로가 된 스베타 쉭시나 초단과 알렉산드르 샤샤 초단이 차지했다. 스베타는 유럽인 중 가장 뛰어난 성적을 거두어 유럽 챔피언이 됐다.

월간바둑세계 최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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