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당·황순원 문학상 최종 후보작 지상중계 ⑨ 소설 - 정미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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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심위원들에 따르면, 소설은 한국문학사에서 소위 '부르주아 소설'의 새 지평을 연 문제작이다. "올해 발견한 한 편의 소설"이라고 극찬했던 신수정 예심위원의 설명부터 듣는다.

"여태의 한국소설은 대체로'없는 자의 예술'이었다. 중산층보다 못사는 계급의 서사였다. 가진 자의 서사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하나 그건, 없는 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타자(他者)의 세계였다. 그러나 이 소설은 가진 자가 들여다본 가진 자의 이야기다."

소설에서 나는 부잣집의 교양있는 사모님이다. 그냥 사모님이 아니라 '교양있는' 사모님이다. 이 점이 중요하다. 생각해보자. 이전의 한국소설에 등장했던 마나님 가운데 교양까지 겸비한 인물이 있었는지. 돈 냄새 풍기는 유한부인이나 신경쇠약증 사모님 말고 이른바 정상적인 캐릭터가 얼마나 됐는지.

그러나 후보작에선 다르다. 나는 나름의 양심과 양식에 따라 사고하고 행동한다. 사모님은 정상적일 뿐더러, 우아하고 고상하다. 하나 여기에도 한계는 있다. '나름의 양심과 양식'은 결국 유한계급의 그것이다. 소설 속 일화 하나를 소개한다.

아파트 주차장에서 뺑소니 사고가 난다. 한 방문자가 주차돼 있던 벤츠 승용차의 백미러를 깨고 달아난다. 나는 우연히 사고를 목격한다. 벤츠 주인이 운전기사에게 사고의 책임을 물었다는 얘기를 전해듣지만, 나는 입을 다문다. 수리비가 운전기사 월급보다 많은 200만 원이라는 얘기도 전해듣지만, 그래서 잠깐 흔들리기도 하지만, 나는 끝내 나서지 않는다. 괜스레 남의 일에 끼어드는 건, 나름의 양식에 어긋나는 행동이다.

나는 컨테이너에 사는 며느릿감을 대할 때도 교양 없이 굴지 않는다. '집안' 얘기 따위는 꺼내지도 않는다. 나는 서울 강남의 백화점에서 며느릿감에게 최신 유행의 옷을 사줄 줄도 안다. 하나 백화점에서 나는 깨닫는다. 도란이는 그 동네 사람들과 달랐다. '뼛속 깊은 데서 나오는 다름' 같은 게 그녀에겐 있었다.

'도란이 나이는 남대문 좌판에서 산 옷을 걸쳐도 깜찍하고 눈부실 나이지만, 여기, 이곳에서는 아니었다. 이상했다. 무얼 입혀도 때깔이 나지 않을 아이처럼 미워 보였다.'

소설은 유한계급의 행태를 아니꼽게 바라보지 않는다. 묵묵히 보여줄 뿐이다. 부잣집 마나님의 사고와 행동에 비위가 상할지도 모르겠다. 사모님이 가난한 며느릿감에게 보였던 호의란 것도, 따지고 보면 값싼 동정일 수 있다. 아들의 연인에게서 자신의 풋풋했던 20대를 발견한 것일 수도 있고. 여하튼 사모님은, 사모님 입장에서 최선을 다한 것이다. 작가의 설명을 들어보자.

"존재의 결핍 같은 걸 말하고 싶었다. 자본의 욕망이 갉아먹은, 자잘하고 생기있는 것들을 얘기하고 싶었다. 이 소설이 묘사한 부르주아의 모습 역시 이전의 한국소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다만, 이 작품을 읽고 자신의 삶과 욕망과 현실에 대해 스스로 질문하는 독자가 있다면 고맙겠다."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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