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옥현 (덕성여대3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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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지난7일 어머니 심부름으로 오랜만에 정릉시장에 갔다. 어머니는 2천원을 주며 콩나물 2백원어치·시금치 3백원어치·산나물 3백원어치를 사고 남은 돈으로 생선을 사오라고 했다.
시장에 들어서니 비린 냄새와 시장특유의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그래도 싫지 않았다. 돈 있는 사람들은 자가용을 몰고 백화점에 가 비닐에 봉지봉지 싸놓은 것을 골라 사온다지만 우리네 서민들의 가계부는 그럴수 없다.
길도 아닌 시장통로에서 사람들과 어깨를 맞닥뜨리며 우선 야채가게부터 찾았다. 낯선 야채상인들이지만 모처럼 장보기 심부름이어서 그런지 반갑게 여겨졌다.
『아주머니 콩나물 2백원어치 하고 시금치 3백원어치만 주세요.』
산나물 장사를 찾지 못한 나는 맨먼저 만난 야채가게 앞에 다가가 돈을 꺼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야채가게 아줌마는 들은척도 안했다. 행여 내말을 듣지 못했는가 싶어 다시 말했다.
『아줌마 콩나물 2백원어치하고 시금치 3백원어치만 주세요. 네.』
그러자 야채가게 아줌마는 나를 한참 뚫어지게 보다 씩 웃었다. 그러고는『콩나물 2백원어치와 시금치 3백원어치를 어떻게 파니. 5백원이하는 안파니 딴데 가 알아봐』라고 퉁명스럽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지난 연말 어머니 심부름으로 장보러 왔을 때만해도 분명히 콩나물 2백원어치를 샀고 시금치도 3백원어치를 샀다. 그런데 그사이 그것도 새해들어 콩나물·시금치값이 올라 2백∼3백원어치는 팔수 없다는 것이었다.
기가 막혀 어리둥절하다 공중전화로 가 어머니한테 사정얘기를 했더니 어머니도 믿어지지 않는 듯 했다. 작년과 올해가 불과 며칠사이인데 물가가 이렇게 뛰었다니 실감나지 않았다.
물론 새해들어 인상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시분제로 전화사용료가 올랐고 입시학원비도 정부미값도 올랐다. 정초부터 이같이 가파르게 물가가 오른다면 서민들의 가계부담을 어떻게 메울까 걱정이 앞선다.
할수 없이 5백원어치 이하는 팔지 않는다는 가게에서 콩나물 5백원어치와 시금치 5백원어치를 사고 산나물은 포기하고 생선 1천원어치를 산채 집으로 왔다. 물가인상 때문에 산나물 3백원어치가 증발(?)된 셈이었다. 돈 2백∼3백원이 가치가 없어졌다고 생각하니 저녁밥상을 대하면서도 어쩐지 콩나물과 시금치에 손이 가지 않았다. 씁쓸했다.

<서울성북구정릉 3동651의 223통7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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