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진단/90년대의 변화 30문 30답: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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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동구 개혁바람 북한에도 불 것인가
페레스트로이카의 바람이 동구권을 휩쓸고 지나자 세계의 이목은 아직도 변화의 조짐을 전혀 보이지 않고 있는 아시아의 사회주의국가,특히 북한으로 쏠리고 있다. 미소정상이 『냉전은 끝났다』고 선언했지만 한반도에는 냉전체제의 유물들이 그대로 잔존하고 있다. 과연 한반도의 이 고착상태는 언제까지 계속될 것이며 특히 김일성 1인지배체제의 북한이 끝까지 버틸수 있겠느냐에 주목하고 있다. 92년은 김일성이 만80세,김정일이 만50세가 되는 해이며 95년은 남북분단 50년이 되는 해이기기도 하다. 이런 측면에서 20세기의 마지막 10년이 되는 90년대는 한반도에 있어선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북한의 체제개방여부및 권력승계양상과 통일정책의 변경가능성을 전망하고 이에 따라 남북관계가 어떻게 전개되어 나갈지에 대해 살펴본다.
◎한반도 정세
(13)동구사회주의 국가들의 연쇄적인 1당지배체제 붕괴현상이 북한에 어떤 영향을 미칠것으로 보는가. 북한도 동구민주화바람에 따라 변화할 가능성이 있겠는가.
(14)북한은 권력세습을 공식화하기 위해 제7차 당대회를 금년중 개최하리란 예상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의 사태변화로 이 대회가 열리지 않으리란 전망도 나온다. 권력승계시기를 언제쯤으로 보며 과연 부자승계가 성공하겠는가.
(15)90년대에는 현재 진행중인 남북회담이 어느만큼 진척되리라 전망하는가.
(16)김일성은 금년 신년사에서 남북한의 장벽제거및 자유통행을 제안하는 한편 이례적으로 팀스피리트훈련에 대한 비난도 하지 않았다. 이같은 김의 신년사가 나온 배경과 새 제안의 실현가능성을 어떻게 보는가.
(17)냉전분위기가 사라지면서 동서군비축소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이에 주한미군의 단계적 감축론이 제기되고 있는데 이러한 변화가 남북한정세에 미칠 영향을 어떻게 보는가.
(18)북한은 지금까지 한반도에서 2개의 국가가 존재하는 현실을 부정하고 이른바 대남전략을 축으로 「남조선 해방노선」을 고수해왔다. 최근의 정세변화에 맞춰 북한의 통일정책이 대화나 협상노선,또는 선의의 경쟁관계로 변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가.
◎동구민주화 영향(13)/김유남 단국대 교수ㆍ국제정치학/강대국도 격변보다 안정바라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는 동서독의 장벽을 무너뜨리는등 지난 45년간 유지돼온 세계질서를 근본적으로 뒤흔들어 놓고 있다.
냉전체제를 바탕으로 유지돼온 국제질서가 붕괴되면서 세계는 지금 대안이 없는 「무질서」를 경험하고 있다.
소련 스스로는 자국의 문제를 안은채 동구의 빠른 개벽에 대해 속수무책이고 서구는 1992년 유럽통합을 앞두고 동구의 민주화보다 파괴되는 유럽의 질서를 걱정하고 있다.
미국도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를 자축하기보다는 동구를 구제해야 하는 엄청난 부담때문에 정신을 못차리고 있는 형편이다.
이와 같은 국제적 배경속에서 유일하게 아시아공산국만이 세계적인 민주화 격동에 휘말리지 않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 6월의 천안문사태이후 대중적 민주화운동에 제동이 걸려 있고 북한은 그러한 중국에 감사하면서 근대판 「쇄국정책」에 희망을 걸고 있다.
이 시점에서 동구의 민주화 파장이 북한에 미칠것인가 하는 문제는 소련ㆍ미국,그리고 중국의 손에 달려있다고 봐야한다. 그러나 미ㆍ소ㆍ중은 내심으로 아시아,특히 북한에서 대중적 민주화의 격동이 일지않기를 원하고 있다.
만약 북한에서 체제변화와 함께 속도빠른 민주화운동이 벌어지면 남북한관계는 물론 동북아의 질서가 파괴되고 아울러 미국과 소련,그리고 중국의 기득권이 흔들리게 되기 때문이다. 경제적,그리고 외교적으로 아시아의 대국인 일본도 한반도의 현상에 만족하므로 북한의 민주화에 관심이 없는것 같다.
다시 말해 현상황아래에서의 안정을 바라는 미ㆍ소ㆍ중ㆍ일의 세계전략대문에 김일성의 반민주화 쇄국정책은 그의 정치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성공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결국 서구의 뿌리인 르네상스문화가 심은 자유주의문화가 결여된 동양에서 민주화는 더디 올 수 밖에 없다는 비관론을 오늘의 북한사회를 보면서 다시한번 되씹게 된다.
◎김부자 권력승계(14)/신정현 경희대 교수ㆍ정치학/다음 당대회에서 구체화 될듯
1990년대에 있어 북한정치는 커다란 전환점을 맞게될 것이 분명하다. 그것은 그동안 유지되어온 김일성 1인지배체제가 어떠한 형태로든 종지부를 찍어야 하기 때문이다. 김일성 개인의 노령화를 고려해보더라도 앞으로 10년간 북한정치는 권력승계문제를 해결하는데 집중될 것이 확실하다.
이미 1970년대 들어서부터 북한은 김정일을 「당중앙」으로 지칭하면서 「3대혁명소조」활동을 주도케 함으로써 김일성후계체제를 다지기 시작했으며 1980년10월에 열린 노동당 제6차 당대회에서는 김정일의 권력승계를 위한 조직적 개편을 단행하기도 했다. 그후 김정일은 사실상 제2인자로서 소위 「실권파」를 주변에 등장시키면서 북한정치의 전반에 걸쳐 막강한 권력을 행사해 왔다.
김정일의 권력승계체제는 앞으로 열릴 노동당 제7차 당대회에서 보다 더 구체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관심의 초점은 그와 같은 당대회의 개최시기에 쏠리게 된다. 북한 노동당 강령에 의하면 당대회는 5년마다 개최되도록 되어 있으나 그 시기는 당중앙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변경시킬수 있도록 되어 있다.
노동당대회가 매10년마다 열려온 전례에 비추어 금년에 제7차 당대회가 개최될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해진다. 그러나 북한이 직면하고 있는 경제적 침체나 급격한 동구권의 변화에 대한 대처등으로 금년도에 당대회가 개최될 것이라는 전망은 매우 어둡다. 그대신 김일성의 나이가 80세가 되고 또 현재 추진중인 제3차 7개년 경제계획이 조기달성되는 92년도에 당대회가 개최될 수 있을 것으로 예견된다.
언제 당대회가 개최되고 또 이를 통해 김일성권력승계가 명실공히 이루어진다 할지라도 북한정치체제는 여전히 두가지 중요한 과제들에 직면하게 될것이다. 하나는 경제침체의 극복이고 다른 하나는 대외개방의 문제다. 이들을 위해 북한은 과감한 체제개혁과 정책적 변화를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남북회담의 전망(15)/유석렬 외교안보연구원 연구실장/「공존」유지하며 점차 교류확대
남북한은 85년 한때 다각적인 남북대화를 추진,사상처음으로 1백51명의 남북한 고향방문단과 예술단이 서울과 평양을 교환방문한바 있다. 그러나 그후 남북대화와 교류는 그이상 진전을 보지못한채 90년대를 맞게 되었다.
남북대화나 교류가 이와 같이 정체되어 있는 이유는 첫째,북한이 대남혁명과 체제방어전략을 고수하고 있기때문이다. 즉 북한은 남북대화와 교류가 그들의 대남혁명전략에 도움이 되지 않고 억제방어전략에도 손상을 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둘째는 한국정부가 대화와 교류를 위한 대담한 대북조치를 취할 수 있는 자신감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국내정국의 불안때문에 국민들의 힘을 결집하여 남북대화와 교류를 자신있게 주도할수 없었던게 사실이다. 셋째는 주변국제상황이 남북한의 그러한 태도를 부추기기 때문이다. 그동안 계속돼온 동서냉전은 한반도긴장고조의 주요인이었던게 사실이다.
그러나 90년대에는 이와 같은 장애요인들의 상당한 부분들이 제거될 전망이다. 90년대 한국은 우여곡절중에도 민주화와 경제발전을 지속시킬 것이며,군사적 균형과 사회안정으로 대북자신감을 얻게될 것이다.
북한도 체제보존의 필요에 따라 기존전략을 수정,남북공존전략을 추구함으로써 남북대화와 교류를 활성화시킬 것이 예상된다.
이에 따라 한국은 북한의 개방을 유도할 목적으로 대화와 교류를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이며,북한도 대남혁명노선을 포기하고 체제유지를 위한 노력을 집중할 것이다. 남부대화와 교류는 북한의 남북공존전략을 위해 필수적인 것이 될 것이며,북한은 강대국들의 한반도 교차승인과 남북한유엔공동가입문제도 신중히 고려할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90년도 북경아시안게임에 참가할 남북단일팀구성은 북한에 있어 불리한 남북한 대결을 면케해주고,남북공존의 기틀을 마련해줄 중요한 기회가 될수도 있는 것이다.
◎김의 신년사 배경(16)/김남식 평화연구원 연구위원/개혁추세 영향 전향적 제스처
작년 하반기 격렬한 동구권의 변화와 관련해 금년 김일성의 신년사는 특별한 주목을 끌었다. 이것은 동구권의 변화가 북한의 정세에 어느정도 영향을 미칠 것인가와 관련된 것이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의 예상처럼 예년의 신년사와 비교해 볼 때 특별히 달라진 측면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그것은 첫째,북한의 대내정치와 사회주의 건설방법이 지금까지 주체사상에 입각해 추진해왔던 모든 것이 가장 정확했다고 자평하고,앞으로 당의 「영도적」 역할을 높이면서 『우리식대로 살아가자』는 것을 다시금 재확인하고 있다. 또 사회주의ㆍ공산주의에서의 방법문제와 관련해 이미 추진해오고 있는 3대 혁명(사상ㆍ기술ㆍ문화) 노선과 청산리방법및 대안의 사업체계라는 사업방법과 관리방식의 정당성을 재강조하고 있는 점이다.
둘째,경제정책에 있어서는 당의 중공업우선과 경공업ㆍ농업의 동시발전을 재확인하고,3차7개년계획의 4차연도에 해당되는 금년도의 경제건설에서 의ㆍ식ㆍ주의 원만한 해결에 주력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3차7개년계획 전반에 걸쳐 추구하는 기본과업이기도 하다.
셋째,대외문제에 있어서는 「사회주의 승리」의 역사적 필연성을 강조하고 한반도의 「비핵평화지대화」를 위한 노력을 더욱 경주할 것임을 주장하고 있다.
넷째,대남및 통일문제에 있어서는 기왕에 제시된바 있는 「고려연방제」 통일 방안이 합리적이라는 것을 재확인하면서 유엔에의 가입은 분단고착화를 이끌 것이라고 밝히고 「대화창구의 일원화」에 대한 반대입장을 보임으로써 종전과 큰차가 없음을 나타냈다.
다만 분단의 장벽을 없애야 한다는 제의를 하면서 자유왕래와 정치ㆍ경제ㆍ문화등 모든 분야에서의 전면개방을 제의하고,그를 위한 남북의 최고위급이 참가하는 당국과 각 정당수뇌들의 협상회의 소집을 제의하면서 현재 진행중인 남북의 여러 회담을 활발히 추진시켜나갈 것임을 밝힌 점이 다소 진전된 자세로 평가된다.
◎미군철수후 변화(17)/최영 외교안보연구원 교수/해빙무드 조성의 호재로 작용
40여년동안 한반도에 주둔해온 미지상군은 몰타회담에서 상징되고 있듯이 미소의 군축 화해노선 진전에 따라 90년대에는 감축내지 철수될수밖에 없을것이다.
우선 부시 미행정부는 오는 4월 의회에 「주한미군평가보고서」를 제출토록 돼있다.
그리고 체니 미국방장관도 94회계연도까지 총1천8백억달러의 국방예산을 절감할 의사를 밝힌바 있다.
그리고 오는 2월에는 서울에서 제22회 한미연례안보협의회가 앞당겨 개최될 것인데 이 회의에서 주한미군감축문제가 구체적으로 토의될것으로 보인다. 이 토의는 방위비분담문제와 연동될것이다.
이러한 주한미군의 협상변화가 한국에 미칠 영향은 무엇보다도 남북한관계개선에 「걸림돌」이었던 북한의 2중전략이 그 바탕을 상실케된다는 면에서 한국에는 긍정적이다. 2중전략이란 안보문제는 미국과,통일문제는 한국과 토의한다는것으로,예컨대 북한의 대미평화협정 체결주장은 그 바탕을 상실케될것이다.
남북한안보문제는 「서울­평양 축」에서 다루어야 하고 90년대의 주한미군감축내지 철수는 이러한 축의 형성을 보장해줄 것이다.
여기서 유념해야할 중요한 문제는 한ㆍ미ㆍ일 3국간의 안전보장협력이 어떤 형태로 부상될것인가 하는 점이다. 그동안 미국의 연구소와 언론등에 비쳐진 논의들을 보면 미국은 일본이 역할을 대폭 떠맡아야한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이 문제는 미소의 군축노력이 동북아시아에서 어느 정도로 추진되는가에 달려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는 「미소관계+일소관계」라는 중첩된 상황의 진전에 많이 의존할것으로 보인다.
또 주한미군의 현상변화가 북한에 미칠 영향은 단적으로 남북한관계에서 유일한 카드로 북한이 주장해온 「정치ㆍ군사문제의 우선토의」라는 전가의 보도는 빛을 잃을것이다.
아무튼 90년대 주한미군의 감축,또는 철수 그 자체는 남북한관계를 호전시키는 「호재」로 작용할 것이다.
◎통일노선의 전환(18)/민병천 동국대 교수ㆍ정치학/대남 유화자세 조심스레 추진
한반도의 평화와 민족의 통일문제는 남북한및 주변국의 상황과 정책여하에 따라 결정된다. 그런점에서 앞으로 10년간 북한의 정책이 어떻게 변할것인가에 따라 21세기 민족의 운명도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북한에 주어진 선택의 길은 크게 보아 세가지다. 무력(남한혁명)통일노선지향,전면화해(평화측면)의 교류협력(통일측면)지향,적대적 공전의 한정교류지향등이 그것이다. 세개의 길중에서 가장 바람직한것은 말할것도 없이 전면적 화해에 바탕을 둔 교류협력의 길로 북한이 가는 것이다.
북한이 앞으로 10년안에 그런 방향으로 갈수 밖에 없다고 생각되는데 그 이유는 90년대가 북한에 주는 의미의 중요성때문이다.
90년은 7차 노동당대회가 있어야하는 해(연기될 수도 있을 것)이고 92년은 김일성이 80세가 되며 93년은 제3차 7개년 경제계획이 마감되는 해다.
이런 상황들 때문에 북한은 곧 대남유화 자세를 조심성있게 구체화시켜갈 것이며 몇년안에 자세의 대전환을 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길만이 김일성사망,경제위기,국제조류등에서 북한 스스로 생존할 수 있을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정책적 대전환을 가로막는 요인도 적지 않다.
소련의 중심부로부터 떨어진 북한은 소련식의 평화공존과 개방및 개혁의 길보다는 중국식을 택하려 하며 서방국가들과의 교류가 거의 없어 변화촉매인자를 가질 기회가 없었고 「주체사상」으로 무장되어 동구와 사정이 다르며 김정일체제가 상당히 뿌리내려 정치체제의 유지를 강력히 추구하는등의 상황이 대담한 화해교류 협력을 제약하게 될것이다.
이와 같이 북한으로 하여금 평화통일에 보다 적극적일 수 없도록 하는 요인들이 있기는 하나 역사의 흐름은 북한의 정책상의 경직성과 폐쇄주의,그리고 극좌적 행동을 깨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기 때문에 90년대는 우리 통일사에 중요한 장을 여는 연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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