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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기의 현장을 가다<12>|″먹는건 사회주의로 안 되더라〃|조심조심 개혁 발길|불가리아 또 다른 동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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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불가리아는 사회주의에 성공한 나라다. 그러나 이젠 더 이상 사회주의가 필요 없는 나라다.』
불가리아 소피아에서 어렵사리 만난 한 간부급 기자의 선문답 같은 설명이다.
「어렵사리」라는 뜻은 소피아에서는 외국인들이 이곳 관리들이나 사회적 신분이 남다른 위치에 있는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고「선문답」은 역설적이지만 오늘날의 불가리아를 상당히 근접하게 설명하고 있는 말이다.
철권통치를 해온 지프코프가 축출된지 이틀만에 만난 이30대 후반의 기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불가리아는 사회주의 도입으로 지난 40여 년간 의료·교육 등 사회보장제도가 확고하게 자리잡았다. 이 사회보장제도는 스웨덴 등 북구국가들의 수준이다. 이것은 사회주의가 불가리아 국민에게 준 큰 선물이다.
그러나 불가리아는 이제 사회주의가 필요 없다. 사회주의의결과로 현재 국민들은 먹을 것이 크게 부족한 상태다.
국민은 이제 더 잘살아야 한다. 그러나 사회주의로는 이것을 달성할 수가 없다.』
사회주의의 업적을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으로 반반씩 얼버무린 이 기자는 이렇게 덧붙였다.
『불가리아는 이제 변화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 기자를 사흘 전에 만났더라면 사회주의 때문에 먹을 것이 부족하다든가, 이제 개혁이 필요하다는 말을 이처럼 서슴없이 말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제3자 없이 취재진과 만난 이기자는 개혁을 열망하면서도 속을 솔직하게 내보이지 못할 만큼 40년간의 체제에 대한 두려움을 털어 내지 못하고 있었다.
불가리아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은 이러한 현상을 그들 속에 잠재해 있는 국민성의 이중성에서 찾고 있었다. 그러한 국민성을 이해하기 위해 역사적 배경을 얘기하는 사람이 많았다.
불가리아는 기원전 5세기에 국가를 형성했었으나 서기 46년부터 681년까지 6세기이상 로마통치 아래 있었으며 동로마제국통치 2세기(1018∼1185년), 오토만 터키제국지배 5세기(1396∼1878년)등 지난 2천년 동안 약1천3백년을 외국의 지배를 받은「피침의 나라」였다.
피 지배국의 국민들이 보이는 공통적인 특성인 신중성과 눈치보기, 자발적이고 적극적이기보다 피동적이고 소극적인 행동에 그들은 익숙해 있었다.
특히 근세사에서의 5백년 터키지배, 40년간의 스탈린주의식 통치는 이 나라를 유럽식 문화와 전통에서 동떨어지게 해왔다. 따라서 이 나라의 개혁은 폴란드나 동독 등 다른 동구국가와 판이한 배경을 갖고 있다.
개혁이 시작 된지 두 달이 지난 이제 거리의 일부 공격적인 시위군중들이『공산당해체』라는 구호를 들고 나오지만 대부분 국민의 의식 밑바닥에는 체제에 대한 공포심이 깔려있다.

<천3백년 외국지배 소극적 국민성 길러>
이 같은 국민성은 지난해 11월10일 35년 통치의 지프코프 국가평의회의장 겸 당 서기장이 사임하고 후임에 친소외교관출신 믈라데노프가「선정」된 날에도 비슷하게 나타났다.
북한 못지 않게 폐쇄적 철권통치를 30년 이상 휘두른 지프코프의 사임 다음날 소피아시 분위기는 그 전날과 조금도 다름없었다. 도심에 신문 호회가 나도는 모습도 전혀 보이지 않았고 거리에서 신문을 펴들고 열심히 읽고있는 사람들 모습도 찾아볼 수 없었다.
서방식 관점에서 볼 때 불가리아 근세사상 최대의 사건으로 전 국가가 떠들썩하고 흥분할 충분한 이유가 있는데도 소피아 거리는 여전히 조용했다.
한 50대 가정주부는 지프코프의 사임과 믈라데노프의 등장 소식에 놀라지 않았느냐는 질문에『아니오』라고 간단히 대답했다.
소피아시 호텔 비토샤에서 만난 불가리아의 한 지식인은 그같은 불가리아 국민들의 반응을 다른 방식으로 설명했다. 『나도 놀랐다. 그러나「놀랐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지프코프가 사임을 발표한 10일 토요일 밤 전 불가리아 국민들은 모두 텔리비전「뒤」에 있었다』
그는「텔리비전 뒤」라는 풍자적 표현에 대해 선뜻 자세한 설명을 하려들지 않았다. 그가 다음에 덧붙인 간단한 설명은『국민들은 항상 TV를 뒤따라가고 있으며 TV가 알려 주는 대로 받아들인다』였다.
그는 수동적 국민자세를 설명하면서『그렇지만 모든 국민들이 그날 TV뉴스를 보고는 함께 깜짝 놀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련이 건너간 다리 두들려 보고 건넌다>
지난해 12월11일 소피아시 공산당사 앞 시민들의「침묵 시위」는 이 같은 불가리아 국민들의 면목을 다시 확인해주는 것이었다.
이날 공산당중앙위는 지프코프 시절의 헌법 개정논의가 열기를 띠고 있었다.
「공산당의 지도적 위치」를 명문화한 불가리아 헌법 제1조를 개정하느냐는 여부가 논의의 초점이었다.
수 천명의 시민들은 밤늦게 까지 중앙위가 열리고 있는 건물 앞 광장에서 아무런 구호없이 조용히 서 있었다. 밤이 깊어지자 말없이 손에손에 촛불을 켜들고「새롭고 밝은 사회」를 원한다는 무언의 의사표시를 하는 것이 전부였다.
불가리아인들의 이 같은 행동과 욕구의 상층 돼 보이는 의사표시방법은 다른 동구국가와는 분명히 다른 것이다.
폴란드·체코·동독·헝가리 등 국민의 격렬한 의사표시와 최근 루마니아의 참사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특유의 국민성 때문에 공산당이 약속한 개혁을 믿지 못하고 아직도 움츠러든 상태에서 사태의 진전을 지켜보는 국민이 대다수다.
이런 현상을 재야 그룹인「페레스트로이카」의 대변인을 맡고 있는 불가리아 학술원의 사회학자인 페트코 시메오노프는 최근 서방기자와의 문답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국민대다수가 개혁을 지지하는가.
『최근의 여론조사로는 국민의 50%가 지지하고 있다.』
-왜 그 정도밖에 되지 않는가.
『국민들이 기본적인 생존문제에 매달려 평생 공포에 젖어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상점 앞에 줄서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많아 정치문제를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이 같은 두려움에서 비롯된 신중함은 이 나라 국민들이 가장 친근감을 느끼는 제1의 우호국가인『소련이 건너간 다리를 두드려 보고 건넌다』고 비유될 정도다.
소련은 다른 동구 국가에게는 정복자 내지 압제자로서 반감과 배척을 불러일으키고 있지만 불가리아 국민에게만은 해방자로서 환영받고 있다. 5백년의 터키지배에서 벗어나게 해준 고마움을 그들은 소련에 대해 갖고있다.
그래서 소연방의「17번째 공화국」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소연방내의 다른 공화국인 그루지아나 우즈베크공화국 등의 다른 민족들보다 훨씬 친소적인 국민으로 알려져 있다.
소련의 혁명기념일이 불가리아의 공휴일인가 하면 TV의 제3채널이 모스크바방송이고 프라우다가 12만부 구독될 만큼 소련을 따르고 있다.
따라서 소련의 개혁은 불가리아에도 불가불 따라야 할「모범답안」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불가리아 개혁요구 외국인들이 더 놀라>
지프코프 전 서기장은 개혁문제에 있어서 완강할 정도로 보수적인 입장을 보였다.
지프코프는「형제 국」소련이 이미 5년 전부터 시작한 개혁을 뒤따르기는 하지만 소련의 개혁이 성공하는 것을 본 뒤에 같은 방식의 개혁을「조심스럽게」답습하자는 것이었다고 소피아의 한 외국상사원은 설명했다.
그러나「조용」하고「잘 따르는」국민으로 알려진 불가리아국민이 방법이야 어떻든「개혁」을 요구하는 의사를 표시한 것은 불가리아인 자신들보다도 이를 지켜보는 외국인들에게는「놀라움」이 아닐 수 없었다. 이 같은 국민들의 개혁요구 의사 표시는 신임 믈라데노프 대통령에 대한 기대와 실망의 엇갈린 감정의 표현이었다.
지난해 11월10일 당 서기장 취임연설에서 믈라데노프는『사회주의 수호』를 세 차례나 강조하는 등 결코 급격한 변화도, 사회주의의 포기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는 이어 불가리아 공산당의 지도적 위치를 재 강조하고『공산당만이 국가의 제반 문제에 책임을 부여받았다』고 재확인했다.
이날 TV에 나타난 믈라데노프의 표정에는 새로운 역사전개에 대한 흥분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불가리아 국민들은 지난해 12월 중순의 당 중앙위에서 개혁에 대한 전망이 밝아 보이지 않자 5만여명의「대 군중」이 복수정당제 등을 요구하는「대규모」시위를 벌였다.
믈라데노프는 이 시위 이후 오는4월 총선을 실시하기로 한 서기장취임 당초의 공약에 덧붙여「공산당의 지도적 위치」를 포기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 이 문제는 오는 19일 당 중앙위에서 재론될 예정이다.
이처럼 최근까지의 개혁과정과 양상은 모두가 소련이 밟아온 과정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불가리아는 소련이 시험하지 않은 개혁은 시도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곳 외국인들의 평가다.
따라서 겉으로는 차고, 속으로는 뜨거운 불가리아인들이 그들이 내심 절실히 원하는 개혁을 어떻게 밖으로 표출하게 될 것인지. 그리고 이 같은「소련 본받기」개혁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는 관심거리다.
불가리아 소피아에서 만난 기자는 또 이렇게 말했다.
『우리 나라는 소련의 레닌주의가 가진 가장 나쁜 점에서만 영향을 많이 받았다.』
글 김동수 부국장 진창욱 기자
사진 주기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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