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0원짜리 상품권 왜 많은가 했더니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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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국내에서 유통되는 상품권(사진)은 수백 가지에 이른다. 구두.외식.주유상품권부터 과외.건강검진.골프예약.김치.산후조리.극기훈련 상품권까지 다양하다. 1999년 2월 경기를 살리기 위해 규제를 없앤다는 명목으로 정부가 상품권법을 폐지해 상품권 발행이 자유롭게 됐기 때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정한 표준약관 등 일정 기준만 맞추면 어느 업체든 제한 없이 상품권을 발행할 수 있다. 이 중 바다이야기 같은 성인오락실에서 경품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경품용 상품권은 18개다. 문화관광부 산하 게임산업개발원에서 경품용 상품권 발행업체로 19곳(한 곳은 아직 상품권을 발행하지 않고 있음)을 지정했기 때문이다.

99년 이전에는 상품권을 발행하려는 사업자는 재정경제부 장관의 인가를 받아야 했다. 인가 조건이나 발행 요건도 까다로웠다. 이에 대해 상품권 발행은 '사적(私的)인 계약행위'이므로 정부의 규제는 기업의 자율 활동을 가로막는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상품권법이 폐지됐다. 상품권법이 폐지된 실제 이유는 '소비 활성화'였다. 재경부 관계자는 "당시 상품권 관리가 부실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지만 침체한 소비를 살리기 위해 상품권 규제를 없애야 한다는 의견에 밀려 법이 전면 폐지됐다"고 말했다.

현재 상품권 관련 규정으로는 소비자 피해보상에 관한 내용뿐이다. 상품권에 남아있는 잔액의 환급을 거부하는 등 소비자 민원이 발행할 때 소비자보호원에 피해 구제 요청을 할 수 있도록 한 소비자피해보상 규정(재경부 고시)이 유일한 관련 규정이다. 또 상품권은 유가증권이기 때문에 이를 발행할 때 인지세를 내야 하지만, 액면 1만원 미만으로 발행하면 인지세도 면제받는다. 성인오락실 경품용 상품권이 5000원짜리로 발행되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이처럼 상품권을 관리하는 곳과 관련 규정이 없다 보니 엉터리 상품권 발행과 유통으로 인한 소비자 피해도 늘어나고 있다. 소비자보호원에 접수된 상품권 피해자들의 상담건수는 2002년 365건에서 2004년 459건, 2005년 723건으로 급증했고 올 상반기에도 494건이 접수됐다. 최근에는 투자자들에게 높은 이자를 주겠다며 자신들이 발행한 상품권을 팔았다가 되사는 방식으로 투자금을 모으는 신종 불법 수신행위까지 금융감독원에 적발돼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특히 문화관광부는 2002년 '게임업체 경품 취급 기준' 고시를 통해 성인오락실이 상품권을 경품용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면서 상품권 편법 할인 등의 빌미를 제공했다. 문화부는 지난해 3월 적격 상품권을 골라 인증해 주는 인증제도를 도입했다가 지난해 8월 이를 '지정제'로 바꿨다. 가맹점 수, 지급보증 능력 등이 있는 업체만 경품용 상품권을 발행할 수 있게 한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한도를 넘겨 상품권을 발행한 업체가 등장하고 4조원으로 예상했던 경품용 상품권 시장이 30조원 규모로 커지는 등 경품용 상품권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홍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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