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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낙선 보상으로 공직 주는 나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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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재용 전 환경부 장관을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으로 임명한 것은 이 정부가 그토록 강조해온 시스템 인사를 스스로 파괴한 것이다. 특히 이 정부의 인사 방식에서 나타났던 나쁜 병폐들이 압축적으로 드러났다.

첫째, 이 정부가 추진해온 공모제가 얼마나 허울 좋은 것인지 말해준다. 이 전 장관이 내정됐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제대로 된 전문가들은 신청도 하지 않았다. 보건복지부 관리들은 사전 내정설을 부인하지 않는다. 공정한 인사를 하는 듯이 포장해 국민을 속이고, 내 사람 심기에 몰두해 왔다는 의혹이 사실임을 확인시켰다.

둘째, 전형적인 보은 인사, 회전문 인사다. 이 전 장관은 총선에서 낙선한 뒤 환경부 장관으로, 대구시장 선거에서 떨어진 뒤 다시 공단 이사장으로 임명됐다. 선거에 나가 떨어진 것이 누구를 위한 공헌이었나. 김대중 전 대통령은 '능력이 있으면 자리를 주고, 공이 있으면 상을 주라'고 했다. 국정을 운영할 장관 자리를, 24조원의 거대한 예산을 다룰 공직을 집권당에 대한 공로를 보상하는 상으로 나눠줄 일은 아니지 않은가.

셋째, 전문성이다. 청와대는 이 전 장관이 환경운동을 했다고 환경전문가라고 했다. 그런 이 전 장관이 환경부 장관으로서 해놓은 일이 도대체 뭔가. 열린우리당의 대구 시장 후보로 나서기 위해 경력을 쌓은 것 이상 업적이 있는지 의문이다. 이제 치과 의사 출신이라 건강보험 전문가라고 할 건가. 정태호 청와대 대변인은 재정 지출 구조 합리화를 위해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그것이 꼭 코드인사를 해야 할 수 있는 일인가. 그런 전문가를 구하기 위해 공모하는 것 아닌가.

그뿐 아니다. 현 정부 들어 청와대를 퇴직한 4급 이상 196명 가운데 61명이 정부 부처.산하 기관 고위직이나 민간 기업.협회의 임원 등으로 자리를 옮겼다고 한다. 대통령 선거만 이기면 공직을 전리품으로 나눠줘도 되는 것인가. 이러고도 이 나라에 공직 인사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고 있다고 강변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