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안데스 음악 '한의 DNA' 우리와 통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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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그는 잘나가던 광고인이었다. 중앙일보 광고대상 등에서 수차례 상을 받으며 명 카피라이터로서의 입지를 탄탄히 굳혀가던 그다. 그러나 1989년 어느 날 예기치 않게 찾아온 문화적 충격이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그는 길을 가다 레코드 가게에서 흘러나오던 애수 어린 안데스 음악을 듣고 10여 분간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사진=박종근 기자

"말로 설명하기 힘든 전율이 온몸을 찌릿하게 관통했습니다. 레코드 가게에 들어가 음악의 정체를 알아봤더니 안데스 음악 그룹 '로스 차코스'의 노래였어요. 그 순간이 제 인생을 바꿔놓았지요."

93년 대전 엑스포 남미관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그는 함께 관람 갔던 가족과 따로 떨어져 '로스 차크라스'란 에콰도르 그룹의 연주를 이틀 내내 들으며 '안데스 음악의 고향에 가서 그들의 음악을 배우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회사를 옮기면서 잠시 갖게 된 짬을 이용해 99년 한 달간 페루.볼리비아.에콰도르 등을 다니며 살아 있는 안데스 음악을 온몸으로 느꼈다. 프리랜서로 독립한 이듬해인 2002년에는 론다도르.케나.삼포냐 등 악기를 배우기 위해 다시 남미를 찾았다. 2003년 7월부터 현지의 안데스 음악 그룹을 데려와 국내에 안데스음악을 소개했던 그는 올해 현지에서 픽업한 멤버들로 '로스 안데스'란 그룹을 만들었다.

이처럼 그를 안데스 음악의 길로 이끈 매력은 무엇일까. "슬프고 애잔한 선율이 한국인의 정서와 잘 맞아요. 안데스 음악은 300년간 스페인의 식민지 지배를 받았던 슬픈 역사 때문에 음악에 한(恨)이 서려 있지요. 그리고 스페인 지배를 받기 전까지 우리 국악과 같은 5음계를 사용했다는 점, 같은 몽골 인종이란 점도 우리를 안데스 음악에 끌리게 하는 요인입니다."

조씨는 2003년부터 안데스 음악인들과 함께 수백 회에 걸쳐 지하철역 공연을 해왔다. 공연하다 보면 사람들이 그를 에콰도르 사람인 줄 알고 영어로 말을 붙이기도 한다고. 지하철역 공연에 대한 사람들의 뜨거운 반응에서 그는 '안데스 음악의 DNA와 우리 음악의 DNA가 서로 통한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다른 멤버들도 같은 생각이다. "한국인은 안데스 음악을 마음으로 느끼는 것 같아요. 안데스 음악의 서정성과 자연미 때문일까요?"(움베르토 코르도바) "사람들이 우리 음악에 심취해 악기에도 관심을 가져요.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볼 수 없는 반응입니다."(엔리케 베가) 지하철역 공연을 통해 입소문이 퍼져 인터넷카페(다음카페 '안데스음악') 회원은 8000명이 넘는다.

로스 안데스는 25, 26일 서울 영산아트홀에서 첫 콘서트를 한다. 언더그라운드(지하철역)를 벗어나 오버그라운드(콘서트홀) 무대에 서는 것이다. 콘서트의 부제는 '안데스로 가는 길'. 그 길 위에서 사람들이 잉카의 숨결과 안데스의 맥박을 느낄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미다.

"좌우명이 '내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자'인데, 지금 제 마음은 온통 안데스 음악에 가 있습니다. 안데스 음악처럼 재미있고 제 가슴을 설레게 하는 것은 아직까지 없었습니다. 전생에 잉카에서 태어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죠." 공연 문의 02-747-0072.

글=정현목 기자 <gojhm@joongang.co.kr>
사진=박종근 기자 <joke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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