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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하는 동구-열기의 현장을 가다(11)|정치는 "뜀박질"경제는 "내리막길"|체코의 경제구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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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체코슬로바키아에는 두 가지차가 있다. 하나는 정치라는 이름의 승용차이고 또 다른 하나는 경제라는 기관차다.
지난해 11월17일 프라하 대학생시위로 시작된 체코의 민주화는 시위 2주일만에 40년통치 공산정권이 무너지고 비공산당이 집권하는 정치적 격변으로 이어졌다.
체코정치는 현재 시동이 걸리자마자 급발진한 승용차가 민주화라는 고지를 향해 맹렬히 질주하는 모습이다.
프라하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한다는 미헬군은 체코경제를 기관차에 비유했다.
『체코는 2차대전 직전까지만해도 유럽에서 여섯번째가는 공업국가였다. 또 동구에서는 동독에 버금갈 정도로 선진대열에 있었다.
그러나 오늘의 체코경제는 완만하기는 하지만 내리막을 천천히 달리고 있는 기관차와 같다. 기관차가 정지하려면 많은 제동력이 필요하다. 또 경기호전이라는 오르막을 오르자면 가벼운 승용차보다 더 많은 추진력이 필요하다.』 미헬군은 이 덩치 큰 기·관차같은 체코경제를 부양시키자면 노선을 바꿀 수 있는 결단련 있는 기관사가 필요하고 오르막을 오를 수 있도록 더 많은 석탄을 화차안으로 투입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무역고 백억달러>
체코의 오늘날의 문제는 이처럼 국가가 승용차와 기관차라는 서로 다른 길을 가는 다른 모습의 차로 이루어져 있는데 있다.
정치는 승용차를 타고 오르막을 내닫지만 아직도 내리막을 구르고 있는 기관차에 대해선 속수무책이다.
지난해 11월20일 민주화시위의 열기가 뜨거운 프라하 바츨라브광장 시위현장에서 만난 프라하대에서 수학을 전공하는 한 학생은 『체코경제를 개혁하자면 정치개혁이 우선돼야 한다』고 단언했다.
그는 정제얘기를 꺼내다가 불쑥 『한국의 총 무역고가 얼마나 되느냐』고 반문했다.『89년말 현재 1천억달러가 넘을 것』 이라고 대답하자 『그렇게나 규모가 크냐』 며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그는 『체코의 88년도 총 무역고는 1백억달러였다』고 말하고 수출입이 반반으로 국제수지 흑자는 거의 제로라고 말했다.
헤어지면서 그는 『체코도 수출을 대폭 늘려 경제성장을 이룩해야 한다』고 말하고 현재 체코경제의 가장 큰 문제점은 국가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중앙통제방식에 있다고 말했다.
폴란드·소련·불가리아를 거쳐 체코 프라하에 도착하는 외국인들은 프라하시 바츨라브가의 드루즈바나 레푸블리카가의 코트바등 체코 양대백화점을 방문하면 별세계에 온 기분을 갖게 된다. 백화점에는 폴란드·소련등지에서 보지 못하던 풍성한 상품이 서방 여느 도시와 다름없이 화려하게 진열돼 있다.
이들 백화점을 찾는 외국관광객들은 그리고 금방 다시 실망한다. 물건의 질이 서방과는 너무나 차이가 날 정도로 낮아 곧 사고싶은 마음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프라하에서 만난 한 외국상사원은 이렇게 설명했다. 『물건의 질이 낮아 체코에서 사갈 품목이 거의 없다. 수입하고 싶어도 수입할 수가 없다. 체코경제의 커다란 난제는 낮은 상품의 질에 있다』
이 외국상사원은 체코상품의 질적 저하는 세가지 요인에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첫째는 2차대전 이전에 사용하던 설비가 그대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제품의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는데 있다는 것이다.
프라하 공과대학의 한 학생이 말하는 얘기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이것을 반증하고 있다. 그는 『체코가 생산하는 스코다자동차 공장에는 1백년전인 1896년에 설비된 기계가 그대로 있다』고 말했다.
외국상사원은 『체코 산업, 특히 대부분의 공장은 시설이 매우 낡았다. 모두가 서방식 계산에 의하면 감가상각이 다 끝난 상태』라고 말했다.
두번째는 노동자들의 의욕부족이다. 사회주의 체제가 가져다준 보장된 동일임금에 해고가 없는 「이상적」노동구조로인해 노동자들이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 즉 생산성의 낙후다.
이들 두가지 요소는 상품의 질을 떨어 뜨리고 있다.
셋째로 중앙통제방식의 생산체제와 수출입의 관주도로 인한 경영의 비효율성이 수출의 길을 막고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관료주의가 빚고 있는 비능률성은 한 때 유럽산업강국의 하나였던 체코를 서서히 내리막길로 인도하고 있다는 것이 외국상사원의 설명이다.
체코가 그러나 폴란드나 불가리아, 또는 인접 유고와 달리 지금까지 경제문제가 정치현안으로 크게 전면에 등장하지 않고 있는 것은 오랜공업국의 면면을 이어오면서 농업에서도 여타 다른 공산권 국가에 비해 비교적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으로 설명되고 있다.

<농가공품은 수출>
프라하시 서북쪽 1백여km 떨어진 브르디에 있는 제후지체협동농장을 방문했을 때다. 자드라질 밀란조합장은 체코농업은 성공작이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그는 『체코는 농산품은 거의 수입하지 않고 있다. 일부 농가공품은 수출하고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제후지체협동농장은 전체 면적이 5천3백ha, 이중 2천2백50ha에서는 밀을 경작하고 나머지는 과수원과 초지로 1천7백마리의 젖소와 16만마리의 닭을 사육하고 있다.
밀란조합장은 『체코의 농업기술이나 생산성은 거의 서방에 육박하고 있다』고 자랑스레 말했다.
공산당원인 그는 이같이 농업의 성공을 강조하며 체코농업의 문제점은 생산 후의 관리에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제후지체협동농장에서 생산된 농산품은 프라하등 대도시 소비자에게 곧장 판매되지 않고 각 해당 정부관서가 개입, 불필요한 경비와 시간지연의 원인이 되고 있으며 가격은 정부가 통제하고 있어 경영에도 차질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프라하시에서 판매되는 빵이나 달걀·우유는 생산가의 절반이나 3분의1 수준밖에 되지 않고 있다는 그의 설명이다. 그러나 그는 생산비용이 얼마나 되는지 알고 있지 못했다. 또 판매가격이 싼 이유가 정부의 보조금지급 때문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이같은 문제는 농업 아닌 다른 산업에서는 더욱 심각하다.
체코가 자랑하는 두개의 수출의 주제품 생산공장인 크리스탈렉스와 야블로네츠카 비주테리에의 경우 그 문제점은 매우 심각하다.
프라하시에서 북쪽으로 1백20여km 떨어진 노비 보르시의 크리스탈렉스는 1억달러어치의 각종 크리스탈제품을 외국에 수출하는 노동자 1만5천명의 큰 공장이다.

<국내·수출가 차등>
체코전국에 20개의 자회사를 갖고 있는 크리스탈렉스의 프란티셰크 아르노스트 총지배인은 수출가가 국내 소비가격보다 2∼3배이상 높게 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같은 제품이 체코국내시장에서는 가격이 매우 낮아 『국민들이 쉽게 사서 쓸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체코정부의 수출가·내수가격 차등적용은 수출에서 얻은 높은 이익을 바탕으로 국민에게 싼값으로 물건을 공급하는 이른바 「국민복지」 차원에서 시행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만일 자본주의 방식으로 수출가를 대폭 내리면 수출 물량이 가격인하폭의 몇배로 늘어날 수도 있고 그럴 경우 전체이익은 훨씬 더 커질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선뜻 대답하기를 주저했다.
아르노스트 총지배인은 『우리는 수출도 주문생산방식』이라고 말하고 『국제시장에서 값을 내리면 제품에 대한 이미지가 떨어진다』며 『현재 방식이 더 좋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체코 크리스탈렉스의 크리스탈 제품은 이미 세계적으로 명성이 나 있다』면서도 기존의 좋은 이미지를 살려 더 높은 이익을 올릴 수 있는 방안에는 소극적이었다.
그는 수출물량증대와 국제수지확대는 정부가 결정할 일이고 자신은 품질개선과 주문받은 만큼의 생산만 하면 자기책임은 끝난다는 입장이었다.
프라하 북쪽 동독과 폴란드 국경 인접의 야블로네츠에 있는 액세서리 및 샹들리에 공장인 야블로네츠카 비주테리에사의 경우 이같은 문제점을 시정하려다 정부의 강압에 의해 실패한 경험을 갖고 있었다.

<생산·판매 이원화>
이 회사의 홍보담당 보후밀 클리흐씨는 야블로네츠카비주테리에사가 지난88년 생산과 수출의 단일화를 시도하다 실패했었다고 말했다.
야블로네츠 비주테리에는 인구 4만5천명의 야블로네츠시 및 인근도시의 노동자 3만3천명을 고용, 연간 1억달러어치의 각종 인공보석장신구와 샹들리에를 수출하고 있다.
그러나 생산은 이 회사에서 맡고 있으나 수출은 별개기구인 야블로넥스라는 정부기관이 도맡고 있어 생산과 판매의 이원화는 물론 국제시장정보입수 루트마저 야블로넥스가 쥐고 있는 이중구조로 사실상 야블로네츠카비주테리에사는 야블로넥스의 하청업자구실에 머무르고 있다.
쿨리호씨는 『생산에는 외국의 기호나 새 제품정보도 매우 중요하고 자금 회전도 신속해야 공장 운영이 손쉽게 된다. 그래서 지난88년 야블로넥스를 우리 회사에 합병, 경영효율화를 시도했으나 잘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굳이 더 이상의 설명은 기피했다. 그러나 정부기관인 야블로넥스의 강력한 반발로 그 같은 시도가 무산됐음을 암시했다.
쿨리호씨는 은퇴할 나이가다 됐다면서 자신의 이름을 밝혀도 좋다고 말했다.
체코의 한 경제개혁론자의 최근의 말은 이를 한 마디로 설명하고 있다.
『이같은 체코의 경영계급 「마피아」는 너무나 잘 조직돼 있으며 최근까지의 공산당정부에 의해 잘 보호받아 왔다.
그들 마피아는 사실상 개혁을 바라지 않고 있으며 갖가지 방법으로 저항해 올것이다』
체코도 정치개혁의 대행진은 시작했으나 지난 40년간 터잡고 있는 관료 및 상층부 경영진이 기존권한을 잃지 않기 위해 버티고 있는 한 경제라는 기관차는 쉽사리 내리막길에서 정지하지도 오르막길을 오르지도 못할 것이라는 얘기다.
글 김동수부국장 진창욱기자
사진 주기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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