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기KT배왕위전'
<도전 5번기 제3국>
○ .왕 위 이창호 9단 ● . 도전자 이영구 5단도전>
흑▲는 보통 때라면 대개 선수가 된다. 그래서 이영구 5단은 중앙 쪽을 어떻게 둘까 골똘히 생각하다가 무심코 이곳에 두었다. 하지만 이창호 9단이 손을 빼 54를 두자 이영구는 꿈에서 깨어난 듯 화들짝 놀란다. 54는 가치 있는 수다. 이 수의 두터움이 상변 흑진의 값을 소리 없이 깎아내리고 있다.
또한 54는 흑A의 연결을 강요하고 있다. 한 집도 생기지 않는 무가치한 수를 두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럴 수는 없어서 흑은 55부터 몸을 비비며 안에서 삶을 추구한다. 하지만 그 사이 하변 백집이 공짜로 굳어지고 있다. 선수도 잡을 가망이 없어 보인다. 흑▲ 한 수 때문에 유망하던 형세가 자꾸 꼬이고 있다.
'참고도' 흑1로 그냥 한 칸 뛰어야 했다. 형세가 좋을 때는 평범한 수가 좋은 수가 된다. 이때도 백2로 둔다면 흑은 3으로 한 번 더 뛰어든다. 실전과 비교할 때 천양지차다. 백이 2 대신 3에 두어 하변을 지킨다면 그때는 흑이 귀중한 선수를 잡아 최대의 요소인 B를 차지하게 된다. 어느 쪽이든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흑▲가 이 모든 것을 비틀어버렸다. 이영구도 "왜 두었는지 나도 모르겠다"고 했다. 너무 정성을 다하다가 사고의 진공상태를 빚은 것이다.
박치문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