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수험생 스트레스-김??우<국립의료원 정신과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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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고교 2년생인 박모양(17)은 친구들과 얘기 도중 갑자기 숨이 쳐바치면서 팔다리를 뒤틀고 쓰러져 응급실로 실려왔다.
의식을 완전히 잃은 것은 아니었으나 혼돈과 불안을 보였다. 내과와 신경과의 진찰소견과 응급으로 실시한 뇌 컴퓨터 촬영으로는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
뒤늦게 달려온 어머니는「신경성」의 가능성이 있으니 당분간 정신과에 입원하는게 좋겠다는 의사의 권유에 처음엔 펄쩍 뛰었으나 신경성이라는 말이「심리적 혹은 감정적 갈등에서 오는 뜻」이라는 간곡한 설명에 마지못해 입원권유에 응했다.
박 양은 자기 반에서 1, 2등을 다투며 친구들의 선망의 대상이 돼왔고 집안도 외견상 큰 문제가 없었다. 언니와 남동생도 성적이 좋았고, 언니는 그런 대로 괜찮은 대학에 다니고 있었다.
우리는 우선 박 양이 어떤 상황에서 증상이 나타났는지를 알아보았다.
친구들과의 요즘 화제는 거의 대학입시에 대한 것이었고 응급실에 실려온 날도 예외가 아니었다. 마침 대학입시 결과가 발표되기 시작했을 때인데 한 친구가 자기 이웃 중에「미역국」먹은 입시생이 있다는 얘기를 꺼냈다. 꽤 공부를 잘했었는데 떨어졌고 충격에 그 입시생의 어머니도 몸져누웠다는 내용이었다.
박 양은 그 얘기를 들으며 마치 내년에 자신이 그렇게 될 것 같은 착각이 들었노라고 했다.
평소에 학교성적이 떨어지면 어떻게 하나 걱정해 왔다고 했다.
어머니가 다른 사람에게 『우리 애는 공부를 잘해요. 그러나 안심할 수 있나요』 하고 은근히 자랑할 때가 제일 부담이 됐고, 좋은 대학에 다니는 언니를 생각해볼 때 실패하면 그 망신을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도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입시생들에게는 한번쯤 심리적 고비가 있는 것 같다. 물론 고3에 올라가서 두세달 때 가장 힘들어하는 것 같고 여름방학 후에도 많은 고3 학생들이 정신과를 찾는다.
그러나 요즘에는 고2학생들도 이런 위기를 맞는 수가 많다. 특히 성적이 상위권인 학생들에게 많은 것 같아 더욱 안타깝다.
흔히는 성적이나 입시자체에 대한 긴장이나 부담으로 나타나지만 그 뒤에는 거의 예외없이 부모의 기대, 형제자매와의 라이벌 의식이 쫓아다니고 있다.
치료를 해나가다 보면 정신과 의사의 역할에 한계를 느낄 때가 많다.
「입시의 성공여부가 인생의 성공을 좌우하지 않는다」고 설득해 보지만 누가 만든 가치관인지 모르나 입시생의 확고한 가치관인「명문대학에 늘어가야 한다」는 생각과 부닥치기 때문이다.
박 양의 경우 집중적인 개인면담과 가족들과의 대화로 우선 입시 스트레스로 인한 신경증적 증상은 소실됐고 최선을 다해보겠다는 다짐을 보이면서 비교적 일찍 퇴원할 수 있었으나 치료자들의 마음은 가볍지 않았다.
사회에 흐르고 있는 획일적인 입시관이 바뀌지 않는 한 제2, 제3의 박 양이 응급실을, 정신과 진찰실을 찾을게 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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