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치료 제대로 못 받는 군에 자식 맡기겠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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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군 의료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얼마 전 수술을 받던 박모 일병이 숨졌고 지난해에는 노모씨가 제대 직후 위암으로 숨졌다. 최근 총기 사고를 당한 박모 상병은 후송이 지연되면서 세 시간 만에 군 병원에서 숨졌다.

이는 그나마 세상에 알려진 것이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훨씬 많을 것이다. 군에서 중병이 걸리거나 장애를 얻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애지중지 키운 자식을 군에 보낸 부모들은 무사히 제대할 때까지 가슴을 졸여야만 한다.

현재의 군 의료 수준은 심각하다. 우선 군의관 2500여 명 중 숙련된 장기복무자가 3%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면허증을 갓 따고 입대한, 임상 경험이 일천한 의무 복무 군의관들이다.

군의관들이 장기 복무를 기피하는 이유는 보수가 국.공립병원의 절반 정도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간호사 등 지원 인력도 적정 인원에 턱없이 모자란다. 한 내과 군의관은 "진료 여건이 안 갖춰져 있어 실력이 오히려 줄고 있다"고 말한다. 약도 모자랄 때가 많다. 치질로 입원한 한 병사는 "입대 전 먹던 약을 처방받을 수 없다"고 말한다.

장비 부실은 더 심각하다. 앰뷸런스는 에어컨이나 산소호흡기 등 응급 구조장비가 없다. 짐차와 다름없다. 엔진이 낡아 최고시속이 40~50㎞가 안 된다. 2년 전 한 전방 사단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병사가 이런 앰뷸런스 때문에 1시간 이상 후송이 늦어져 과다출혈로 숨진 적이 있다. 자기공명영상촬영(MRI)기나 컴퓨터단층촬영(CT)기가 부족해 한 달 이상 대기해야 한다.

시설은 충격적이다. 모 군병원 건물은 양철이나 슬레이트 지붕에다 시멘트 블록 벽체로 돼 있어 한국전쟁 영화나 일제시대 영상물을 찍는 무대로 쓰인다. 병실은 한 방에 80명 이상 입원해 집단 수용소나 다름없다. 전방 의무대는 병실이 따로 없고 병사용 내무반을 같이 쓴다. 논산훈련소는 최근까지 환자 대기실이 비닐하우스였다.

이러다 보니 병사들의 불만이 높을 수밖에 없다. 국가인권위원회가 현역병 1800명과 예비역 150명을 조사한 결과 27.3%(예비역은 42.7%)는 진료가 신속하지도 적절하지도 않다고 했고, 21.5%(예비역은 51.5%)는 고참 눈치 때문에 아파도 참는다고 했다. 민간 병원에 가기도 쉽지 않다.

군은 그동안 전력 증강 위주로 예산을 써왔고 의료는 방치하다시피 했다. 의무 분야는 전체 국방예산의 2%도 안 된다. 전시작전통제권을 환수한답시고 수백조원을 쓰지 말고 이런 데 먼저 투자해야 한다. 아픈 병사를 낫게 하는 것도 전력 증강에 매우 중요하다. 군 의료체계를 완전히 뜯어고쳐 부모들이 안심하고 자식을 군에 보낼 수 있게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