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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점에 선 '대덕밸리'] (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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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6면

1973년 대덕연구단지가 조성되기 시작한 지 30년이 흘렀다. 대덕연구단지는 그동안 국내 연구개발의 메카로 불리며 나름대로 자리매김에 매진해 왔다. 그러나 이제 대덕도 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드높다. 글로벌 경제구도에 맞게 위상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앞으로 10년 후 대덕연구단지의 바람직한 모습을 두차례에 걸쳐 점검해 본다.[편집자]

대덕연구단지가 처음 생겼을 때 단지 입구에는 검문소가 있었다. 단지로 들어가는 외부차량을 일일이 세워 "단지 내에서는 시속 60㎞를 넘을 수 없다"는 사실을 주지시켰다. 이유인즉 주요 연구시설이 과속에 의한 진동으로 오류를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그만큼 과학기술에 거는 기대가 컸다.

이후 한국의 과학기술은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 지난해 우리나라 과학자들이 과학논문인용색인(SCI)학술지에 낸 논문 수는 2001년도에 비해 8백편 가까이 늘어난 1만4천9백16편. 세계 13위다.

대덕연구단지에는 지난 6월 말 현재 18개 정부출연 연구기관 등 2백32개 기관에 1만8천여명이 근무 중이며 연구인력은 1만4천여명(박사급 4천여명)에 이른다. 대덕연구단지가 한국의 과학기술 중심지라는 사실에 대해 이견을 다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제 대덕연구단지는 변해야 하는 전환기를 맞고 있다. 그동안 교육과 연구에 치우쳐 시장을 견인할 만한 '리딩(Leading) 기술' 창조와 국제 기술경쟁에 대한 대비능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연구개발 성과의 사업화는 물론 각 연구소의 자생능력이 떨어진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실제 각종 수치에서도 대덕연구단지가 활력을 잃고 있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벤처기업 입주현황을 보더라도 2001년 1백35개를 정점으로 지난해 99개, 올 상반기 87개로 계속 감소 추세에 있다.

대덕 연구기관의 낮은 기술개발수익률(기술개발수익/수익 있는 기술개발비) 또한 질타의 대상이다. 정부출연연 19개 기관이 국회 정무위 박병석(통합신당)의원에게 제출한 자료한 따르면 지난 7월 말 현재 1천7백18억여원을 투자해 2백16억7천8백만원의 수익을 얻어 12.6%의 수익률을 올렸다.

그나마 전체 수익의 78.6%를 차지하는 전자통신연구원을 제외하면 4.08%에 그쳤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최영락 원장은 "대덕연구단지는 한국을 대표하는 기술혁신 클러스터(집합단지)로 나가야 한다. 그래야 국제적인 연구집단과 경쟁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미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대가 1980년대 이후 벤처기업의 산실로 자리잡으면서 미국 3대 바이오 클러스터의 핵심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견고한 산.학.연 협력 네트워크와 창업에 대한 지원 때문이었다.

대덕은 이제 겨우 벤처기업 수준에서 클러스터 형성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걸림돌도 만만찮다. KAIST 김종득 과학영재교육원장은 "비슷한 연구를 하는 사람들이 산.학.연을 가리지 않고 공동연구를 펼칠수 없는 환경"이라고 못박았다.

각 정부출연연이 프로젝트를 수주해 인건비를 조달하는 PBS를 시행하다 보니 기관 이기주의가 발동, 연구비를 기관 밖으로 내놓으려는 움직임이 대폭 줄었다는 지적이다. 결국 대덕연구단지가 혁신 클러스터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정부출연연의 위상을 명확히 정립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기초과학은 대학에, 사업화 가능성이 큰 연구과제는 기업에 넘기는 대신 초대형 국책과제와 공공기술 연구에 매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함께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책이 나와야 대덕의 취약 요소인 기업체 유치를 성공적으로 보완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일각에서는 국내 대기업처럼 정부출연연에 외국인 석학을 최고경영자(CEO)로 영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일본 이화학연구소가 실험실장급의 3분의1을 외국인으로 교체한 뒤 연구소의 수준을 끌어올린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심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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