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마니아 혁명의 사필귀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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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루마니아 국민들은 결국 전형적 민중혁명의 방법으로 일가 족벌 독재체제를 무너뜨렸다.
연초 폴란드에서 조심스럽게 되살아났던 폴란드 자유 노조의 개혁운동은 헝가리·불가리아·체코·동독으로 번져나가면서 동구 전역에 거대한 변혁의 돌풍으로 커나갔다.
이 돌풍 앞에서 개혁의 역사적 불가항력성을 인정하고 순응한 공산국가들은 그나마 당을 정치세력의 일부로 살아남게 하고 변환의 충격과 마찰을 어느 정도 순화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끝까지 이 시대의 흐름에 거역한 루마니아 집권세력은 혁명을 겪고 완전히 몰락했다.
루마니아의 경우는 집권세력이 휘두를 수 있는 모든 권력보호장치를 모두 동원했음에도 국민들의 개혁욕구가 결국 승리한 획기적 선례를 보여 준다. 루마니아 다음으로 변혁에 강하게 저항했던 동독에서 공산당 수뇌부가 송두리째 몰락한 경우로 미루어 볼 때 동구에서는 집권 공산당의 저항이 강하면 강할수록 몰락의 정도가 이에 정비례해 완벽해졌다는 하나의 패턴을 찾을 수 있다.
차우셰스쿠는 탈소 자주화노선을 정권안보를 위한 족벌체제강화에 이용해온 지 오래며 극단적인 폐쇄경제로 인해 부유한 농업국가이던 루마니아는 최빈국으로 전락, 국민들의 불만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나 마찬가지의 상황이었던 것이다.
만약 그가 다른 바르샤바 동맹국인 폴란드나 헝가리·체코 등과 같이 점진적이고도 과감한 개혁조치에 뜻을 같이했다면 오늘과 같은 유혈사태는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의 강경 노선에 반발해 유고 공산당이 루마니아 공산당과 관계단절을 선언하고, 헝가리가 40년된 지호조약을 폐기하고, 동독공산당이 항의서한을 채택하는 등의 움직임이 일고 있었을 때만이라도 차우셰스쿠가 망상에서 깨어나 현실주의자로 변신만 했던들 무고한 루마니아 국민들의 희생은 없었을게 아닌가.
어이없게도 그는 천안문식 살상행위를 자행하면서 대세에 순응하기를 거부함으로써 자기 조국에 엄청난 피해를 주고 나서 스스로 무덤을 판 셈이다.
우리는 루마니아사대에 대해 바웬사가 한 경고를 북한을 비롯한 모든 개혁저항세력들이 귀담아 듣기를 충고하고 싶다. 10년 가까운 점진적 개혁운동을 성공시킨 바웬사는 차우셰스쿠 일가의 몰락을 보고 나서 북한·쿠바·베트남 등도 조속히 개혁노선을 택하지 않을 경우내년을 못 넘길 것이라고 논평했다.
우리는 루마니아와 같은 방식의 변혁이 북한에서 일어날 경우 남북한관계의 순조로운 전개에 도움이 될 수 없다고 본다. 그런 뜻에서 북한도 다른 동구국가들의 예에 따라 이제 몰락기에 접어든 스탈린주의, 족벌 세습독재, 유일사상의 미몽에서 하루 속히 깨어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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