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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1998년 사과, 그 후 8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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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1998년 3월 2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신규 법관 임용식장. 당시는 '의정부 법조 비리'로 법원이 여론의 뭇매를 맞을 때였다. 의정부지원의 판사 출신 변호사가 사건 수임을 위해 판사 10여 명에게 금품을 뿌린 사건으로 의정부지원의 판사 38명 전원이 교체됐었다. 그날 윤관 대법원장은 "우리 사법부는 일부 지방의 비극적인 일로 시련을 받고 있고, 국민에게 큰 걱정을 끼치고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쌓아온 사법제도와 판결에 대한 승복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참담한 심정을 느낀다"며 사과했다.

이어 대법원은 법관윤리강령을 전면 개정하는 등 법조 비리의 재발 방지를 다짐했다. 윤리강령에는 '법관은 타인의 법적 분쟁에 관여하지 않고, 다른 법관의 재판에 영향을 미치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 '법관은 재판의 공정성에 관한 의심을 받을 염려가 있는 경우 금전대차 등 경제적 거래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새로 들어갔다. 95년 처음 제정된 법관윤리강령에는 없는 내용이었다.

2006년 8월 16일 대법원 대회의실. 이용훈 대법원장은 전국 법원장 회의를 열어 "죄송하다는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며 머리를 숙였다. 법조 브로커에게서 1억원대의 금품을 받아 구속된 조관행 전 고법부장판사의 사건에 대해 사과하는 자리였다. 이는 비리가 터지고, 사과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8년 전의 모습과 유사하다.

법조 비리는 감시할 제도가 없어 터지는 게 아니다. 제도는 항상 피해 나갈 구멍이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법원의 '통렬한 반성'은 제도보다 판사 개개인에게서 시작돼야 한다. 판사들은 특권.선민.엘리트 의식에 젖어 있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자신들의 작은 편견이나 이해가 소송 당사자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지금도 시민들이 '전관예우'를 왜 믿고 있는지 자문해 볼 일이다.

김종문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