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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권정치 맞선 「민중소리」폭발|「루마니아 사태」 왜 일어났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민주화의 거센 바람에 휩싸인 동유럽 권에서「정통 사회주의의 마지막수호자」로서 독재의 아성을 지키고있는 루마니아가 드디어 변혁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루마니아의 서남부 트란실바니아 지방의 티미시와라 에서 발생한 이번 사건은 헝가리계 개신교목사인 반체제인사 라즐로 토케스를 체포하려는 경찰당국과 이를 저지하려는 헝가리계 루마니아인들 사이에 충돌이 발생함으로써 비롯됐다. 진압경찰들은 주민들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했고, 일설엔 1천명이 사망했다는 보도도 있다.
2천3백만 루마니아 인구 중 10%가 채 안 되는 2백만 명의 헝가리계 주민들은 그동안 계속 문제의 소지를 안고 있었으나, 그것이 심각해진 것은 최근 5년 동안이다.
차우셰스쿠는 70년대에 과감한 경제개발계획을 추진, 외국으로부터 약1백10억 달러의 차관을 도입해 대규모 석유화학공업과 흑해로 이르는 운하건설 계획을 추진했으나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80년대 들어 차우셰스쿠는 경제정책을 자립경제로 전환, 90년까지 루마니아를 완전한 무외 채국으로 만든다는 목표 하에 국민들에게 극도의 내핍과 기아수출을 강요하고있다.
특히 최근 5년 전부터는 대규모 농업재개발정책을 수립, 신개지개발과 농업효율제고를 위해 전국의 농지를「조직화」, 기존의 촌락대신 수많은 농공센터를 수립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를 위해 오는 2000년까지 8천 개 촌락을 폐지하기로 돼 있다.
루마니아 정부는 이 계획을 실행하면서 역사적 유적과 농가들을 마구잡이로 파괴, 그 대신 농민들을 농공센터내에 건설된 형편없는 아파트에 강제로 수용함으로써 농민들로부터 큰불만을 샀다. 현재 이미 7천 개 촌락이 파괴됐으며 2백만 명의 농민이 농공센터로 이주했다.
그런데 문제는 농공센터 건설이 소수민족인 헝가리계와 독일계 주민들이 모여 사는 트란실바니아에 집중됐다는 사실이다. 정부당국은 토지를 정리, 농업생산을 증대시키는 것이 목적이라고 하지만, 주민들은 농업개발을 빌미로 자신들의 고유문화를 말살하려는 음모라고 비난하고있다.
헝가리정부는 루마니아 측에 헝가리계 주민에 대한 탄압을 중지할 것을 강력히 요구했으나, 루마니아는 이를「받아들일 수 없는 내정간섭」이라고 비난, 루마니아-헝가리국경 초소들을 강화, 헝가리계 주민들의 탈출을 막는 한편 헝가리계 주민들에 대한 탄압을 가중시키고 있다.
국제인권단체인 국제헬싱키연맹 보고에 따르면 현재 루마니아에선 헝가리계 주민에 대한 헝가리어 교육이 금지되고 있으며, 헝가리어 출판물 숫자가 현저히 줄어들고 있다. 그리고 얼마 전부터 헝가리어로 진행되던 일부 TV프로가 완전 폐지돼 버렸다.
이 때문에 헝가리계 주민들의 헝가리로의 탈출이 계속 늘고있는데, 지난해만도 약3만 명의 헝가리계 루마니아인 들이 국경을 넘어 헝가리로 탈출, 양국간관계는 계속 불편해지고 있다.
더구나 최근 헝가리가 동유럽국가 중 가장 앞강서 개혁을 추진하고 있는데 대해루마니아는「반사회주의적」이라고 공공연히 비난, 두 나라 관계는 더욱 나빠지고 있다.
한편 차우셰스쿠는 지난달2O일 열린 제14차 공산당대회에서 루마니아의 반개혁적 입장을 다시 한번 천명하고 만장일치의 지지로 당서 기강으로 재선, 자신의 입지를 강화했다.
루마니아에도 반체제 움직임이 없는 것은 아니나 그 세력은 극히 미미한 형편이다. 지난번 당 대회에 앞서 당내일부 저항인사들이「민족구원전선」이란 비밀단체를 조직, 차우셰스쿠의 퇴진을 요구하는 공개서한을 보냈으나 곧 묻혀지고 말았다.
지난 봄에도 6명의 전직고위인사들이 차우셰스쿠에 공개서한을 보내고 그의 사임을 요구했으나, 현재 이들은 모두 가택연금상태에 있다.
루마니아의 반체제 세력이이처럼 미미한 것은 루마니아인 들의 나약한 국민성도 그 한 요인이라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터키, 러시아, 독일의 침략을 받고 살아온 루마니아인 들은 「권력에의 순종」이야말로 가장 현명한 삶의 지혜로 생각하고 있어 국민성 자체가 나약하다.
이와 함께 차우셰스쿠 개인과 그 일족에 의한 전황은 그 도가 지나쳐 말기적 증상을 보이고 있는데 현지인 들은 루마니아를 차우셰스쿠일족 4O명이 이끌어 가는 「차우셰스쿠왕조」 라고 비웃고있다.
차우셰스쿠 자신은 대통령, 당서 기강, 군최고사령관등 무려 6개의 최고지위를 가지고 있으며, 부인 엘레나는 제1부 총리경 정치국원, 후계자인 아들 니쿠는 청년장관직을 맡고 있다. 특히 아들 니쿠의 방탕은 악명 높은데, 최근 미국에 망명한 체조선수 코마네치도 그의 학대를 견디다 못해 루마니아를 탈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극도의 경제적 궁핍 속에서도 차우셰스쿠는 수도 부쿠레슈티에 20세기판 「동화의 성」인 인민대궁전을 짓는데 80억 달러라는 거액을 쏟아 붓고 있다.
구둣방집 아들로 태어나 무려 4반세기동안 루마니아를 철권통치하고 있는 마지막 남은 스탈린 주의자 차우셰스쿠의 권력도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한계에 접어들지 않았는가 하는 느낌이 든다. <추자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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